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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선홍숙, 작품을 통한 미술치료를 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람에게서 향기가 난다. 바램이기도 하지만 그래야 한다. 사진 속에는 찍은 이의 마음이 담기듯, 그림이 그렇다. 전시장 입구에 섰다. 숲 그림 때문이었다. 평온함이 느껴지면서도 그림에는 힘이 보였다. 어떤 사람일까?  더욱 작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시장의 작품은 찍으면 안된다. 그러나 허락을 받으면 된다. '찍지 마시오!' 라는 글자가 더욱 허락을 맡고 싶어지도록 했다. 작가를 만났다. 온화한 성품이었고, 미술치료를 대학에서 가르쳤던 교수님이셨다 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건내 준 명함으로 얼굴을 가렸다. 살짝 작가의 일부를 넣고 포커스는 먼 곳을 향했다. 감출수록 찾아내고 픈 심리!

숲 속에서 찍은 사진으로 작품을 그린다고 했다. 넓은 세상, 그 일부를 도려내어 그림은 그린다? 뭔가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기위해 색칠을 한 흔적이 보였다. 풍성한 솔잎, 허리가 잘려나간 나무의 작품이 보였다. 작가는 잘려나간 곳에서 생명력을 찾았다고 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생명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처럼. 사진은 숨김없이 표현되었고, 그 안에는 구성의 원칙을 지키며, 색감에서 오는 평온을 담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찍는 사진을 피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을 보면 원인 분석에 들어가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얼굴을 가까이에서 찍으면 안된다였다. 나이는 들면 그 나이가 보여야 아름답다. 결국은 포즈까지 가르쳐주며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도록을 선물받았다. 전시장의 그림들을 보면서 공통점이 편온이었고,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편온함은 작가가 세상을 그렇게 보았고, 그렇게 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림은 기억이나 상상으로 그려내지만, 선홍숙 작가는 사진으로 먼저 찍어내고 그 안에 자신의 느낌을 덧칠한다. 그가 지향했던 사진의 프레임 속에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존재 속에서 다시 자신과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그림과 사진의 융합을 통하여 평온을 시도했고, 그 평온은 타인에게 전해지며 내면의 울림을 찾아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술치료의 기법이다. 그 바라봄은 내면의 동일시를 시도하고, 그 감정은 다시 혼돈의 내면을 정돈하기에 이른다. 서서히 사람에게 평온을 주입한다.

"작가의 글에는 은밀한 속삭임, 따뜻해지는 그림, 행복해지는 그림, 감동과 위안, 그리고 성찰의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담겨 있었다. 오솔길, 들녘, 강가, 작은 풀과 흙, 산등성이 등 그가 찾았던 곳들이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작가 자신이 치유의 시간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산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보았다고 작가는 말했다. 큰 그림이 아닌 소박함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그의 의도가 역력했다."

지금 그녀는 평온하다.  자연과 더불고, 그림으로 사유하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그녀는 지금 평온하다.


선홍숙, 작품을 통한 미술치료를 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