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한 사진말고, 그러면서 남들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어라.'
사진을 몇년간 배운 사람에게 푸념을 털어 놓으며 했던 말이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말이다. 누구나 찍지만 아무나 완성할 수 없는 전제이다. 사람의 눈은 줌밍된다. 바라보는 사물에, 지향하는 순간 프레임은 극적으로 구성된다. 사진은 은폐를 열어 재끼는 머나먼 여행, 흥미로운 놀이 등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찍는 사람에게는 항상 디퍼런트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았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은 실존을 체험하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나는 2014년 9월 어느 날, 순천 드라마 세트장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상징적 도구를 구했다.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는 존재자를 존재 자체로 보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찾아낼 단서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정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조재를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그런 무엇, 그것을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그것과의 만남을 시도했던 것이다.
다분히 어디에서 많이 본듯한 것들을 다른 시각을 통해서 낯설게 하기를 시도했다.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특정한 공간은 과거와 더 오래된 과거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에게 그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 시간성 속에 존재하는 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벽면에 흐르는 오랜 세월의 질감 속에서 나는 기억이라는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마네킹이 실존의 표상으로 거론되며 상징적 공간에 그의 전면성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현실속에 표상을 세운 것은 극명하게 현실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나 '너'의 인칭이 아닌, '나'의 1인칭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의 나'를 현재로 끌어들여 은폐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 공간에서 나는 물음을 던지며, 표상에 대한 직관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통하여 '나'에게로 다가가며, '나'를 찾고자 하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프레임은 그 안에에서 기준을 설정하며 그곳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적으로는 실존하지 않지만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공간의 체험을 통하여 시간 속으로 회귀하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표상은 상징하는 계기를 준다. 친근한 나, 정겨운 나, 그리운 나를 대신한다. 시선을 끈는 것들은 다양하지만 표상만 정해지면 사람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몰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순천 드라마 세트장, 존재하는 것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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