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가이드는 저 멀리를 손짓한다. 여기서 찍으면 된다고 강요하듯 추천한다. 그럼 총알을 아끼지 않고 갈겨댄다. 이것이 요즘 사진인들의 사진찍기 실태다. 멀리까지, 때로는 해외도 마다하지 않고 떠난다. 그리고 사진전을 열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린다. 그러나 매한가지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냥 가서 보고 오고 다른 사람들이 촬영한 더 좋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니냐고 물어도 의미없다. 이제 가보면 벌써 꽃을 지었을 것이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언제, 어떤 시각으로 들여다 보느냐다. 이 순간은 나에게 주려고 하늘이 남겨놓은 기회이다.
석양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석양이다. 그러나 같은 장면은 성능좋은 카메라로 눌러대도 만날 수 없다. 세상사는 맛이란 게 이런 묘미이다. 조금만 늦어도, 조금만 움직여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사진이다. 대낮에 다시가서 수십 수천번을 찍어도 이런 사진 만들지 못한다.
하늘은 맑고 뭉게 구름이 인간을 유혹하는 어느날,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빛이 방향을 잃고 특색없는 대낮에서도 한 줄기 빛의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다. 구하라, 그럼 찾을 것이다. 이 말을 음미하게 했던 그 장면이다.
공사판 한쪽 구석에서 찍은 사진이다. 철학을 붙여야 하나? 아무튼 나무라는 의미에서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널판지와 새롭게 태어나 어렵사리 살아가는 어린 나무의 모습이다. 윤회를 떠올리는 대목임에 틀림없다.
멋진 장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 저 너머에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음악회 사진도 찍었다. 그 사진은 누가 찍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음악 소리를 들으며 춤을 추듯 서 있는 나무들의 모양새를 보면 세상은 서로 소통하며 살아감을 느낄 수 있다. 무대에서 나오는 빛이 다양한 모양으로 바뀐다. 그러나 지금을 만들어 낸 빛은 같은 모양으로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그런 사진들이다. 얼마나 축복스러운 일이며, 감동 스러운 일인가? 내가 이 세상에 이런 얼굴로 탄생된 엄청난 경우의 수처럼. 모두에 감사하자.
멋진 사진을 보면 어디냐고 묻는다. 묻지 마라. 그냥 감상하자. 스승의 생각을 뒤엎어야 제자가 보인다. 보라, 아리스토 텔레스가 플라톤,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만 반복하고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의 제자로 머물렀을 것이다. 차별화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물론 취미로 찍는 사진을 멋진 곳에서 찍는 것을 가지고 말하느냐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방법을 익힐 때는 가능한 말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펼칠때는 충분히 자기만의 더듬이로 세상의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 한번 시도해 보시라. 당신을 위한 선물이 세상 어딘가에 준비해 놨으니까.
일상에서 사진으로 보물 찾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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