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트인 공간을 우리는 시원스럽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시원한 것도 아닌데 시원하다고 한다. 그것은 시선으로 느끼는 바람때문일 것이다. 뭔가 확실한 비전을 전해주지 않으면 답답해 하는 것은 불확실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익숙했을 뿐, 우리는 이 조차도 불확실성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이탈리아 여행, 일행과 의기투합하고 어느 기차역에 내렸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드넓은 대지를 기대했건만 뿌연 안개가 우리의 시야를 가로 막았다. 동료들은 실망한 눈빛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느끼려 했다.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달린 뒤 도착한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동양인들을 낯선 얼굴로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마을 상점에 들렀는데 왠지 바라보는 표정들이 그랬다. 안개 속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어떤 생각이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사진을 찍으며 습관적으로 하는 무한 기대가 그날에도 작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미 하나! 다른 사진에 비해 이 사진은 왠지 정감이 간다. 그것은 안개를 뚫고 달려온 노란 빛을 한 자동차의 움직임이 나의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지만 나는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왔으며 다양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뿌연 안개 속을 뚦고 두 사람이 온다. 뚜벅이가 아닌 점잖게 자가용을 타고 온다. 그들은 조토와 마사초이다. 그들은 르네상스의 문을 열고, 잿빛 중세의 도화지 위에 감정의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서 이다. 흐름의 전환을 이야기할때 우리는 그들을 떠 올리곤 한다.
이 사진의 시점은 르네상스의 태동기로 봐야 한다. 잿빛세상, 어둠이 깔리고 움직임이 없던 중세의 틀에서 그 절망의 굴레를 벗고 탄생된 것이 르네상스였다. 기존의 틀을 버리고 예술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에 불이 들어왔다. 길을 따라 다가오고 있다. 차 안에는 조토와 마사초라는 예술가가 타고 있다. 그들은 중세의 절대 권력에 자신의 의지를 표명할 사람들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역사 속의 인물로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안개 속에서, 불확실성 즐기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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