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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중앙대 아카데미 연구반 전시장에서, 동덕 아트갤러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누구나 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란 우스게 소리처럼, 찍는다고 전부 찍는게 아니란 말이다. 전시장에 걸린 사진은 찍은 사진이다. 이유는 작가의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으며 자신과 대화한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중앙대 아카데미 연구반의 수료전이 인사동 동덕여대 갤러리에서 열렸다. 다양한 생각이 담긴 작품들 속에서 많은 공감을 하고 돌아왔다. 즐거운 하루였다.

이런 스케치 사진을 찍으며 적극적으로 공간을 둘러보게 된 이유는 2014년 1월 28일부터 일주일간 '중앙대 인물사진 컨텐츠 전문가 과정'에서 전시를 하기 때문이었다. 공간에 대한 부분은 단순한 작품만 걸 것이 아니라 계기 프로젝트를 한 증거물들도 함께 걸린다. 기존의 전시와는 색다른 풍경들이 보여질 것으로 기대된다.

권혁승, 김영자 작가의 작품이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오는 기준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도 있었지만 결국은 사람이었다. 신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혁승 작가는 새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이 예쁘다. 아이가 사랑스럽다. 김영자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일상을 담았다. 여자에게 아버지는 특별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여자의 첫사랑이었을 아버지! 그 아버지가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 한다. 사진에는 기억 속의 당당한 아버지와 현재의 나약한 아버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량해 보이는 아버지를 더 이상 찍을 수 없다고 울먹이는 작가에게 나는 계속 찍을 것을 권했다. 

사진은 인간을 담는 것이 제일 아름답다. 사진 안에 들어간 것은 결국 나 아니던가?

정현주작가는 인간의 굴레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프레임 속에 갖혀서 고뇌하다가 결국은 자유를 얻는다는 해피앤딩의 기분 좋은 마무리를 짓는 영화의 내용처럼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인간이 고뇌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단조로운 일상들이었을까? 즐겁지 않은 삶이 되었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주부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방안에 있는 여자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고명자 작가가 좋은 예이다.  구름 처럼 보일 수 있는 사진 속 피사체는 공장의 연기였다. 우리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착각하고 사는 것들이 많다. 몇십년을 구름으로 보았다가 연기인 것을 카메라를 잡으면서 알았다는 '바라보다'의 작가. 카메라가 아니었으면 고작가에게 연기와 구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우수꽝스런 한 인생사가 존재했으리라 생각하니 사진이 얼마나 멋진 일을 했는지 알겠다. 더욱 사진이 좋아졌다.

전시장에 꽃바구니와 축하객이 줄을 잇는 가운데 활짝 웃고 있는 장미애 작가. 외국을 다녔지만 전시장에 걸린 사진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했다. 세상은 많은 볼거리들로 펼쳐져있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의도적이어야 가능하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예술작품으로 봤으며 장작가에게 'contemporary New York'이라는 작품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뉴욕의 현재이며, 뉴욕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예술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2년여의 세월동안 선생과 학생으로의 만남에서 그 과정을 보아 왔기에 더욱 이런 작품들에 대한 결실이 눈에 와 닿는 지도 모르겠다.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며, 자신과의 다정한 대화가 오고가길 기대한다.

사진은 지향하는 것을 찍는다. 그 안에는 자신이 존재한다. 자주 읊조리는 말이지만, 질리지 않는다. 내가 나를 찍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사진이 사람들에게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는 도구이길 바랄 뿐이다. 

중앙대 아카데미 연구반 전시장에서, 동덕 아트갤러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