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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계획하지 않을 자유, 대상과 사태에 대한 의미부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기차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따로 발권하지 않고 플랫폼에서 새로 오는 기차를 바로 탈 수 있는 2박 3일 패스를 구입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우리 일행은  숙소는 예약되었지만 과정은 자유로웠다.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었다. 갑작스런 진로 변경도 우리 여행의 묘미였다. 예상할 수 없는, 아니 예상하지 않고 다가오는 상황을 극복해냈다. 처음에는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낯선 광경과 상황들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여행과 사진의 공통점이란? 다름, 새로움, 디퍼런트, 설렘, 권태극복, 만남, 드러냄, 발견 등등.

계획하지 않을 자유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지경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다양하게 펼쳐질 무계획은 무수한 가능성과 대면하게 된다. 낯섦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 이 둘은 건조한 일상으로부터의 전환을 맛보게 한다. 삶은 새로움을 형태적인든 형이상학적 논리로든 접하지 않으면 권태의 덫에 걸려들어 의욕이 상실된다. 상실감이 우울함으로 다가오면 좌절을 맛보게 된다.

여행이 갖는 설레임, 거기에 추가적으로 계획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신선함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평상시 자주 만나던 사람, 일상생활주변의 풍경인데도 색다른 느낌을 줄 때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인간의 뇌는 익숙함이란 반복적 행위를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진은 낯설게 하기이며, 여행 또한 새로움에 대한 욕구의 시도이다. 당연히 여행과 사진찍기는 닮아 있다. 또한 사진 찍기는 여행을 즐거움으로 몰아 넣는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상황으로 만든다는 것은 분명 그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마치 사냥꾼이 조준한 동물이 뭘까를 상상하게 하는 것처럼, 불구경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처럼, 여럿이 한곳에 집중하는 장면이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의도적인 프레이밍을 통하여 시선을 몰아간다. 이 장면은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사람들의 같은 행동은 공감과도 같다.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물음이다. 묻는 형태를 사진에 담아낸 것이다. 그들 각자는 주관에 의해서 다른 물음을 던질테고 거기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의미 또한 다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춤을 춘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린다. 빛이 그곳을 비추어 실루엣을 만들어내니 더욱 영롱해 보인다. 음성이 들리자 바라본 곳에는 하얀 색깔의 의상을 입은 무희가 춤을 춘다. 아름다운 몸짓과 음성이 마음을 사로 잡는다. 무대에선 무희는 관객의 시선을 즐긴다. 또한, 나무가지 사이로 빛 줄기가 화려하다. 솜떨처럼 보송거리는 풀잎들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풍성함처럼 온 대지를 비추는 태양은 구세주의 보살핌이다. 한여름의 풍성함 속에서 자유로운 대화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돌봄처럼 배려하는 바라보기를 통하여 소통하기 시작한다. 조잘거리는 잡담처럼 들리지만 그들의 말 속에는 더불어 함께 하고자함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다."

사진은 현재를 통하여 과거를 바라본다. 오랜 세월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풍경이란 그들 스스로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완성된 것이다. 두 사진에는 자세히 바라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빛을 받아 소스라치듯 놀라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나무사이로 빛의 방향이 나타나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며,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함을 제안하는 것이다. 빛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사진은 생명력을 갖는다. 이 사진에서는 빛, 그것도 빛의 방향을 활용하여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자 은폐되었던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각각의 사진은 존재의미를 찾아내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놀이터로 불러들여 함께 하고자 하는 자연의 외침이다.

이 상황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대상과 사태에 대해 의미부여가 이뤄진다. 바위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셔터 스피드를 활용하여 선명하게 함으로써 시선을 끌도록 했으며 '부른다'라는 의미부여를 했다. 시선을 끈다는 것은 큰 소리를 질러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 호객행위이다. 물은 낙차에 의하여 소리를 낸다. 나무 사이로 빛이 지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 위치해야 발견할 수 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섬광처럼 시선에 자극을 주워 멈춰세운 것이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은폐를  열어재끼고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다. 권태로운 일상을 극복하기 위한, 고독함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더불어 함께 하기에 대한 제안인 것이다.  

존재의미는 제안과 보살핌이다. 당당함으로 소리치는 물소리는 제안이다. 바라보라는 제안이다. 솜털처럼 햇살에 비춰진 풀잎들은 보살핌에 대한 바람이다. 아이의 살가운 미소처럼 순수함을 보여주고 타자에게 배려를 바라는 마음말이다. 이처럼 자연은 지나가는 사람들 불러 세우고 함께 있기를 제안하며 말을 걸어온다. 보라, 나의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세상은 결코 각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더불어 함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계획하지 않을 자유, 대상과 사태에 대한 의미부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