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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그곳을 기억하다. (연합뉴스 마이더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만남 중에 최고의 만남은 '우연한 만남'이다. 이런 게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즐거워진다. 나는 여행이 그래서 좋다. 여행지의 발걸음은 항상 낯선 곳으로 향한다. 식당은 허름한 곳이면 좋고, 할머니가 요리해 주면 더 좋다. 마을 어귀에서 수다쟁이 아저씨를 만나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계획하지 않은 것들이 여행에서 그 다음 일정을 기대하게 해준다. 기대는 낯섦에서 온다. 낯선 것이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다. 현재 갖지 못한, 어딘가에서 찾고자 하는 희망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이상향, 여행은 그곳을 향한다. 그 곳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시간이 흐른 뒤,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게 여행이다. 나는 지금 한장의 사진으로 과거 존재했던 이상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려 한다. 

본래의 사진에서 채도를 조금 뺐다. 과거스런 느낌을 잡아내기위해서였다. 그 시간, 우리는 골목을 걸어가며 식당을 찾고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 골목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좁은 우산으로 굵은 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작정 눈에 띠는 곳으로 들어갔다. 식사는 안되고 차만 된다고 했다. 비라도 피할 겸 처마 밑에라도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었다. 이런 횡재를! 비는 주룩주룩 지붕에서 마당으로 쏟아졌다. 바닥을 때리는 비트가 우리를 과거로 인도했다. 아늑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아이처럼 흥겨웠다. 비가 멈칫거릴 때 그곳을 나왔다. 여주인은 골목 끄트머리까지 따라나와 알려주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었지만 풍성한 음식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아직도 그 기억들이 아른 거린다.

조만간, 기차여행을 떠난다. 다시 이곳을 찾아갈 것이다. 이젠 차라도 한잔 팔아줘야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다. 삶에서 기억은 곳간에 쌓이는 곡식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