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메라 렌즈는 35mm다. 멀리에 있는 것을 당긴다거나 가까이 있는 것을 접사로 찍지는 못한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 불편함을 즐기는 나는 항상 뚜벅이를 고집한다. 걸어서 원하는 위치만큼 가서 찍는다. 그 불편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매력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크게 두가지로 표현하자면, 하나는 현장체험이고 또 하나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이다. 줌렌즈를 사용하면 왠만한 거리는 밀고 당기며 움직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찍는다. 이런 뚜벅이가 많다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여하를 떠나서 강추다. 해봐라, 안해보면 그 맛을 모른다.
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선택사항이지만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갖으려면 그렇다. 사람이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카메라가 사람을 가르친다. 프레임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면 모두 볼 것이란 착각은 그냥 착각이다.사각의 객관적 시선, 프레임은 그것을 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사각은 놓아야 할 위치를 규정해주며 규칙을 통하여 소통하게 된다. 체험이 필요하지만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그 사각은 링과도 같다. 각각의 사물들이 자기영역을 차지하기위한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이며, 촬영자는 심판과도 같다.
그 다음이 감성적 접근이다.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이미지 과잉시대를 사는 우리는 절제미학을 필요하다. 모두를 담는 것은 하향평준화시키는 것이다. 풍요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며 지속적 풍요는 단순한 과잉일 뿐이다. 리듬있는 시선처리를 통하여 세련된 화법을 구사할 수 있다. 마치, 배고품이 최고의 반찬이듯이 시선에서의 강약조절은 스스로에게 환희를 경험하게 해준다.
부산의 어느 다리, 안개 낀 오전의 풍광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뭐라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짚어 나가면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할 것이다. 먼저 화면의 윗부분에 위치한 다리는 같은 다리이나 같은 다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는 관망과 바라봄으로 나뉜다. 언덕의 집앞 골목에서 관망하고 있는 다리는 담이라는 하나의 선에 의하여 다른 세상로 구별된다. 단절되어 있어 보이기에 자신과의 관계설정까지도 단정적이다. 밑의 사진은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멀리 보이는 다리는 바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다리는 안개 속에 있으므로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시선의 그라데이션에 의하여 더욱 긴 여정처럼 아련하게만 보인다. 또 다른 세상으로의 진입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많은 이야기를 파생시킨다. 보이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말한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그 깊이는 얕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자, 지금부터 안개 속에 뭍힌 그 곳은 당신에게 어떠한 곳인지를 말해보라. 어서!
*유사언어란 다리라는 단어 하나로도 누군가는 교각을 말하고, 누군가는 걸어다니는 다리를 말하더라. 이 글에서는 둘 다를 의미하겠다.
저 다리를 통해 시점을 바라보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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