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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무엇이 시선을 끌게 하는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책을 보는 중이었다. 문장이 '진부한 풍경의 이면을 찾아내려면'이라고 쓰여 있었다. 책을 한권 정해서 수강생들과 스터디를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데 알 듯 모를 듯 답답하게 다가온 이 문장. 진부와 이면이라, 진부하다는 것은 뻔함일 게고, 이면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면은 원래 있던 것인데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라는 것인지의 문제만을 남겨 두었다. 둘 다 비슷한 말이지만 논의의 가치가 있었다. 사진은 사실을 찍는다. 사실은 찍기 쉽다.  보이는데로 찍으면 된다. 그러나 의미와 의식에 대한 문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면, 보이지 않는 것, 그럼 존재? 그리고 사실, 의미, 의식의 문제! 사진을 찍으며 뭐 대단한 것이라도 하는 양 흥미롭게 만든다.

카메라를 들면 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모든 것들이 새롭다. 아니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휴가로 지냈던 어느 시골, 그날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늦은 오후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동네, 더군다나 좁은 입구에는 길이 막혔다는 펫말까지 세워놔 나의 진로를 교란하고 있었다. 호기심의 발동이란 이런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은 통하는 거지 막혔다는게 수상해지기 시작하면서 무대뽀로 그 길을 통과해 들어갔다.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 설명하자면 외부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용하면서도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곳은 한참동안 나의 발목을 잡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 한분이 말을 걸어왔다. '뭐 하슈?' '네, 사진 찍습니다!' 이런 말이 오가다가 울타리도 없는 집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눴다. 내외가 잔디 정원의 툇마루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이곳이 고향이고 30여년을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정년하고 내려와 산다고 했다. 부인으로 보이는 분은 약간 건강이 안좋아 보였다. 말하긴 그렇지만 무표정으로 일관한 모습이 그리 보였다. 어째튼 두 내외만 그곳에 살고 있었다. 나이들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나의 계획을 먼저 실행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찍을때 느꼈던 대로 사진을 현상했다. 음식에 간을 하듯, 석양의 따스함 한 스푼과 색감은 진득하게 한 두 스푼씩을 넣어 만들었다. SNS를 통해 사진을 올렸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이한 색감, 정서, 동화같은, 어린 시절, 그리고 힐링까지를 논하고 있었다. 요즘 나의 표현은 이상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향,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영역을 정해 놓고 갈망할 뿐이다. 이런 곳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마치 살았던 과거,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색깔 없다. 그렇게 봤을 뿐이고, 그렇게 보여졌을 뿐이다. 나는 또 바랬다. 굴뚝의 연기를. 없는 굴뚝도 이상향이다. 이젠 시골이 굴뚝이란 소재는 빼고 시골이다. 군불이라도 지피려면 필요하건만 보턴 하나로 다 되는 편리성 앞에 모두 사라졌다. 사진을 찍고 나오는데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논에 농약을 주고 있었다. 농약을 주는데 대형 선풍기같은 것으로 바람에 날려 논 전체에다가 뿌리고 있었다. 몇 십미터거리까지. 등에 농약통을 짊어지고 한나절은 족히 걸릴 것이 단 5분도 안되어 끝났다. 편리한 세상!

이렇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길 갈망하고 과학은 손살같이 우리 곁에서 추억을 지워버린다. 진부한 이면에 대한 책을 덮으며 과연 시골에서 이런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부한 이면에서 색다름을 찾아내는 방법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이면은  과거의 어느 곳과 시간 속으로 관자를 끌어들여 그 집 주인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닐까? 과연 '진부한'이란 세상에 존재하는가? 그 진부함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아닐지 그 진부함에 대한 사유는 계속 될 것이다.

무엇이 이들에게 그리움을 남겨주는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