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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수줍음'으로 박승직 작가의 전시를 보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모여서 소통하며 산다. 요즘 카메라든 사람들이 희희낙락 몰려다닌다. 사진가들은 동우회에 가입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전국을 누빈다. 카메라만 들고 가면 금방 친해진단다. 소꼽장난하는 아이처럼. 이유가 뭘까? 그건 '과시와 위안'이라는 공통의 목표 때문이다. 사진에는 과시와 위안이라는 심리적 요소가 있다. 말보다 셔터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고 '좋아요' 한마디에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사진을 찍으면 보여주고 싶어한다. 보여 주는 방법으로는 전시가 있다. 돈은 들지만 거머쥘 수 있는 행운도 여럿이다. 작품을 팔 수 있는 작가로의 등극도 그 중에 하나다. 또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후자를 더 꼽는다. 마음에 맞는 친구 한명은 값비싼 보석보다 위안을 줄 수 있다. 나에게 전시장의 방문은 여가활용과 더불어 각성의 시간이 되곤 한다.

박승직 작가다. 그의 백발머리는 몇년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가적 포스는 있었다. 표면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있던 작품과는 달리 이번에는 철학적 사유가 보였다. 은페된 존재를 다루고 있었다. 대지에 내린 눈이 바람에 날려 알몸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수줍음'이란 제목은 그를 닮아 있었다. 흰종이에 뎃셍이라도 한 듯했다. 다가가 휘둥그레 바라봐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림이 여백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덮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과 흰색이 채움과 비움을 비유하기에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절묘한 만남이었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 광경은 '부여된 찰나'로 찍어낸 것이었다. '부여된 찰나'란 그에게 신이 내린 기회를 잡아냈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만남은 예정을 떠올리게 했다.

전시장을 나와 작가와 커피를 마셨다.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생기있는 표정과 눈빛에서 열정을 보았다. 즐거운 사진찍기가 되길 빈다.


'수줍음'으로 박승직 작가의 전시를 보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