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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주름은 거부가 아니라 표현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뭐든 말만하면 되는 세상이다. 과학은 인간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생명연장을 물론이고 외모까지 과학에 의존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광고를 최초로 허가한 곳도 성형외과가 아니였을까. 예술의 창작처럼 얼굴은 창조주의 '다름'이라는 창작 기법에 의해 완성된 창작물이다. 얼굴의 주름은 부담스럽지만, 표정을 짓는데 꼭 필요하다. 많으면 부담스럽지만 없으면 아쉬운 계륵으로 표현해도 될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노인이 미소를 짓는다. 아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순환된다. 아이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만 늙으면 자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약함으로 시작하여 나약함으로 끝을 맺는다.  

번식이라는 인간종의 유지를 위한 선택때문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물론 아이들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동안에 우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려보이길 원한다. 주름은 상징적이다. 주름은 거스러서는 안된다. 주름은 의사표현의 수단이고, 표정에서 없어서는 안된 주요 요소이다. 주름이 없는 얼굴이란 인형처럼 사물로 취급받는다. 주름은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자주 웃는 사람에게는 눈가에 주름이, 근심 많은 사람에게는 미간과 이마에 주름이 생긴다. 주름을 없어진다면 일단 부자연스럽고, 가식적인 표정이 연출된다. 주름은 누군에게나 세월의 흔적으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표식이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름은 탄력을 잃으면서 중력과의 싸움에서 폐배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얼굴의 주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풍요롭게 사는 또 다른 방법이다.


주름은 거부가 아니라 표현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