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근 작가, <JUSTICE> 전을 찾았다.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심상찮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감이 왔다.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 출입이 선별적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나의 외모에서 풍기는 똘끼가 아마도 막으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는지 잠깐 둘러보란 눈치였다. 눈치란 말은 확답은 아니고 서로의 눈빛으로 오고가는 소통의 과정을 의미한다.
입구에 큰 플랭카드, 아니 그것보다는 홍보판이 하춘근전을 축하하고 있었다. 정면보단 뒤에서 뭔가 다르게 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수법?이랄까? 이렇게 찍었다. 그는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정의해 봤다.
촛불, 그리고 집회의 현장, 바닷가의 노란리본 등 다양한 의미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응축과 융합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다. 그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려는 것들이 멋진 글귀로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m 건물 위에서 떨어트려도 다시 튀어 오를 듯한 다부진 몸매와 까무잡잡한 얼굴이 그의 저력임을 보여준다. 그는 항상 진지하다. 무슨 말을 할땐 혼신을 다해 또박 또박 이야기를 한다. 소주를 마실땐 끝까지 쪽쪽 빨리는 소리가 나도록 마신다. 그에게 <정의>는 그의 진지한 삶이 아닐까?
무대 두에서, 무대를 바라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무대 위의 글 귀 속에서 그의 생각은 되새김질되고 있었다. 어떤 형태든 관계없었다. 그가 말하는 건 극명했다. "잘하자, 이럴 순 없다."였다.
더 분주해지는 틈을 빠져 나오며 그를 떠올렸다. 그는 그 시간 대학원의 수업중이었다.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서 내가 찍었던 예전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의 야생성, 어딜 던져놔도 그는 다시 살아 돌아올 그 야생성! 그런 것들이 모여 다시, 또 다시를 외치며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적 거대 반열은 물이 99도의 끓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잘 될 거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하춘근 작가의 <JUSTICE> 전. 그를 바라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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