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지 않은 영화, 잔잔함속에서 부드러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를 찾다가 만난 '언터쳐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화같은 영화였다. 약속이 취소되면서 보게 된 영화인데 그 '약속취소'가 야속하지 않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와닿는다. 마치 인터넷에 키워드를 어떤 글자로 쳐넣느냐와 같은 것처럼. 흑인과 백인, 있는 자와 없는 자, 고상과 거침 뭐 여러가지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하여 이야기를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작년 가을 장애인 올림픽대회에 지도위원을 하면서 장애인들을 만났다. 이 영화, '언터쳐블'의 두 주인공 필립과 드리스의 만남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는 단지 건장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의 만남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흑인 간병인 드리스의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은 거친 매너가 장애인 필립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외치는 용기보다는 차별화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이 전략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립에게 먹힌 것은 차별화였다. 마케팅 기법으로 말하자면 블루오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그 장애를 부각시키며 배려하는 모습은 배려가 아닌 부담과 소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영화에는 임팩이 있고, 웃음이 있고, 슬픔도 섞여있어야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이 꼬리를 물게하는 관객동원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생활보호대상자의 웃음거리 삶을 사는 드리스에게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 또한 몸은 혼자의 힘으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필립에게도 굳어져있던 얼굴에서 환한 치아를 내비치며 웃는 얼굴에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보인다. 그것을 배우의 연기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난도질하여 너저분하게 만드는 짓이다. 이성과 감성, 감성으로 감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때는 이성의 잣대를 드리우면 매력적인 글이 아닐 까 싶다. 하하하. 내 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결국은 사람이라는 거. 우리가 고향을 떠올릴 때, 고향의 들판, 언덕 그리고 뒷 산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함께 놀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가족 그리고 정겨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향수에 젖어 찾아가는 고향에 아는 이 없는 그것은 얼마나 삭막할 까를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장애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것을 다른 세상사람들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잔잔하며, 웃음주고 삶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유럽을 달리는 차를 헬기로 촬영한 아름다운 풍광은 마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옛 애인을 만나러가는 여 주인공의 설렘을 떠올리게 했다. 아흐, 나 여행 떠나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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