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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움직임에 대한 나의 생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움직임의 미학을 아는가? 어떤 논제를 분석하는 것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움직임의 미학이 미술, 음악, 체육과 같은 각각의 분야에서 과거형과 진행형으로 무수한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미술에는 미학이란 기준으로 창작을 하는데 활용되었고, 음악에서는 그 움직임의 리듬감에 의해서 강,약을 조율하며 서로를 접목시켰으며, 체육은 몸의 외형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규정을 규격화하며 운동이나 놀이에서도 그 움직임을 활용해 왔다. 이것이 움직임이 예술과의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럼 움직임의 의도성이란? 의도란 하고자하는 계획이다. 계획은 미리 상상하고 일을 추진해가는 것이다. 상상은 그의 원형과 경험으로부터 생성되어진다. 경험은 움직임이라는 실제를 통해서 터득되어진다. 움직임이란 시작과 결실이다. 그 움직임이란 모든 총체성을 가지고 있다. 움직임은 스스로의 것임과 동시에 타자의 것이다. 타자는 관자이다. 관자이면서 그 상황에 관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움직임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기에 움직임을 단순한 어휘로 판단하기에는 위험요소가 있다. 풍경에도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눈에 보일 정도의 움직임을 주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람이다. 동물도 가능하지만 인간만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특히 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풍경의 일부인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해 논하려 한다.

한발을 떼려한다. 움직임은 또 다른 목적지로 방향을 잡고 있다. 마치 선장이 선두를 돌려 항해를 시작하려는 순간과도 같다. 헝클어진 머리는 바람에 날리고 있는 나무가지와 닮아 있고, 멀리 구름이 잿빛으로 불안감을 보여준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물질들은 대부분 불안감을 준다. 그것은 색에서 톤이 주는 심리적인 압박이다. 밝음은 희망, 어둠은 두려움, 그리고 빨강은 열정, 노랑은 환희, 파랑은 젊음 등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명칭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상황과 시점이 어울리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것들 중에 빛과 형태 그리고 구성이 있다. 그 구성에는 움직임도 포함된다. 불확실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자극하듯, 움직임을 예견할 수 없음이 가능성을 풍요롭게 한다. 이 사진 속의 피사체는 돌발행동으로 바라보는 이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 아니 그가 현재 놀란 상황일 수도 있다. 상황에 대한 가능성이 넓어진 것은 뒷모습이기에 그렇다. 뒷모습과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면의 조합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 내기는 제곱으로 표현해야 될 상황들이다.

움직임이 하나의 선으로 처리된 경우이다. 아마 표정이 보여졌다면 그 표정으로 그의 움직임을 예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루엣으로 표현된 형상은 그냥 그 자체에서 그 움직임을 읽어내야만 한다. 무채색처럼 단일화된 색감도 그러려니와 간결한 몸의 형태가 그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지나가고 있고, 손에 쥔 뭔가를 보고 있다. 아마 그것이 네비게이션을 보며 목적지를 찾아갈 수도 있고, 단순히 손에 쥔 뭔가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피사체의 움직임에 대한 의도성을 획일화하기위해 실루엣으로 단색처리했던 의도가 극명하게 보여진다. 

찰나이다. 아이들의 표정과 동작, 그리고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짓이 보인다. 머물러 있으나 움직임은 존재한다. 그 다음의 동작이 아니라 그냥 그 안에서 움직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주변 인물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이들이 다음으로 행해질 움직임을 예견하게 만들고 있다. 장난치는 아이의 다리사이에 구부러진 기둥도 움직임이요, 아이가 들고 있는 물병속의 물들도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바닷바람이 스치고 있으며 어디에선가 앉거나 날라다니는 갈매기도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파릇 파릇한 잔디도 바람에 움직이고, 조금씩이나마 성장을 통해 움직임을 느끼게 하고 있다. 뭔가 시작 전에 준비운동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움직임의 모양에서 느길 수 있다. 맑은 하늘이 사람들의 움직임이 밝아 보이게 만들고 있다.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도 그 형태를 변화시키며 움직이고 있고, 직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준비 움직임과 의욕들이 움직임이라는 개념 속에 녹아 있다. 가파른 언덕에서 굴러 내려올 돌맹이들도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움직임은 준비를 향한 움직임일 수밖에 없다.

다함께 차차차!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일은 그 순간을 찍어내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찍어야 할 순간은 따로 없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이 사진도 절정에 올랐을때 찍은 사진보다 여간 흥미로운게 아니다. 이들에게 움직임은 도움닫기를 위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도움닫기가 아이라 행위의 목적지이자 결과이다. 동영상의 슬로우모션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움직임은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움직임이란 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던져주고, 의도를 표명하는 발단을 제공한다. 시선의 유동성은 움직임으로 인하여  새로운 화각을 만들어내고, 렌즈의 줌잉처럼 움직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움직임은 목적을 위한 행위이자 과정이고, 예견이다. 어떤 동작이냐에 따라서 그 다음 진행된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사람의 표정 또한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의 목적은 표현에 있다. 그 표현은 소통을 만든다. 세상에 움직임이 없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돌뿌리 마져도 그 풍화작용과 그 주위에 맴도는 바람에 의해서도 움직임은 지속되어 지고 있다. 사람의 외면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흔들이는 마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