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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삶이란 지혜를 확인하는 것. 사랑하는 딸, 백진을 생각하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스마트폰은 기동성과 오묘한 색감이 마음에 든다. 2013년 겨울을 알리는 첫눈을 접하며 촬영한 사진이다. 순간적으로 찍었기에 이런 사진이 잡혔다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더불어 수다를 떨 수 있나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ㅋㅋ.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갑자기 아이가 진로를 선택했다.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아내는 의상디자인 분야에서 근무했고, 나는 지금도 미학을 고민하고 있으니 나름의 위안을 가졌다. 그러나 아이가 한번 택한 길이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 거란 의문에 불안감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인생이란 것이 맨날 성공으로 연장될 수는 없는 법, 실패와 좌절의 아픔 속에서 성장해가는 것이 진리라는 생각으로 함께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학교를 알아봤다.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짧은 목표, 그곳에 들어가야 하는 절차말이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를 확인하고 확신을 주는 일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항상 바쁜 일상을 핑게로 방생수준으로 키웠던 아이에게 아빠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일단 학교에 대한 준비사항을 생각해 봤고, 그 다음은 부모의 말보다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일이었다.

약속장소인 이태원으로 향했다. 골목 골목 신기한 이름과 얼굴을 하고 있는 상점들이 빼곡한 그곳, 딸 진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낯설은 이 과정에서 주위환경까지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며 신선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홍유리라는 홍대를 다니는 학생을 만나는 일이었다. 관광 특성화고를 나와 그의 말처럼 운좋게 홍대에서 통역관련과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나는 전에 강의장에서 만났는데 나에게 던지 질문이 너무 매력적인 나머지 나의 전화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가 올거란 나의 영특한 무의식이 그와의 관계를 맺어놨는지도 모른다.

그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다. 부모의 말은 잔소리이고, 같은 말도 다른 사람이 해야 공감이 가는 우수쾅스러운 진리. 그는 말했다.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고 자신만의 방향을 잡아서 직진하라. 이 말은 학교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체적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 물론 아무리 좋다라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조건들이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의미없는 일이 아니던가? 진이의 성향을 분석해주는가 하면 미래 방향에서 어떤 직업군이 어울릴지까지도 조언해줬다. 인생 상담사의 역할로 진이에게 너무 대단한 경험을 준 기회였다. 난 놀라웠다. 나의 대학시절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의 불확실함에 분노했던 나에 비해 정갈하게 정돈된 그의 화법에서 그의 미래가 밝아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무려 3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궁금한 점에 대해서 준비해간 것과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질문하며 그들의 사랑은 익어갔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서부이촌동이었다. 우연이기에는 너무 의도적일 정도로 그곳은 내가 서울 상경해서 10년간 살았던 동네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도 타 지역에 비해 발전이 덜 된 옛날 내가 지내던 시절의 건물들이 아직도 대부분이었다. 정감이 간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의 진이의 심경이 나의 그 시절과 오버랩이 되어 갔다. 만난 분은 화가이자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였다. 이런 일이 있으려고 미술관련된 분야에 있는 분들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화가의 퍽퍽한 삶이 산업디자인이라는 실질적인 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홍유리라는 학생이 해준 말에다가 더욱 구체적 실현방안을 제시했다. 일단 학교에 합격하면 소묘부터 시작하라.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상상력은 그것을 실현하기에 문제가 있을터, 단순하면서도 극명한 해답이었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의지가 없다면 의미없는 일이었다.

두장소에서 무려 6시간을 보낸 딸아이는 기진맥진한 상황이었지만 설레고 있었다. 그 설렘이 언제까지 지속되며, 그 설렘의 기억이 결실로 향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인고의 삶을 견디며 즐길 수 있을지. 답은 정해졌다. 누구를 찾아가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자기다움을 싹틔으며 그것에 흠뻑 빠져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나 또한 뭉클함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아파서 밤새 곁을 지켜주던, 그리고 친구들과의 힘들었던 기억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바로 그 아이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부모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인생선배들이 말한 그 지혜, 그것이 비단 그들의 말이 아니라 인간은 선배의 말을 두드리며 같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 고민하며 사는 것이 아니던가. 인생이란 희노애락 애오욕의 비빕밥이 잘 버무려져야 맛깔나는 음식의 몸짓과도 같으니 말이다. 부모와 자식은 만날 수 없는 수평선을 걸어가는 철길과도 같다. 그냥 어느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사람하는 딸, 진이야! 

세상이 너를 속이거나 힘들게 하여도 

여기 너를 응원하는 가족이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삶이란 지혜를 확인하는 것.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