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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무주, 반디랜드에서 자연을 만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요즘의 인간들은 문명의 이기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존재이다. 사각으로 구성된  도심의 형태와 쉴틈없이 짜여진 시간표가 사람들의 여유를 앗아가고 있다. 육체의 편안함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동심을 자극하는 노랫가사는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다. '깊은 산 속 옹달샘...', 이런 노래가 어울리는 곳이 있다. 산들이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첩첩산중을 구성한 그곳에는 반대랜드가 있다.  길가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도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사람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지기에 충분하다.

반디랜드에는 곤충박물관, 반디별천문과학관, 반딧불이연구소, 청소년야영장, 통나무집, 반딧불 체험, 반딧불이 서식지등 곧바로 읽어내다가는 숨이 넘어간다.  

산들이 자신의 몸매를 뽐내고 있다. 불루톤의 그라데이션은 화가의 내공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경지이다. 바로 자연이 만들어낸 명작이다. 골마다 담아 놓은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보따리를 풀 기세다. 산넘어 산이란 고난을 상징하는 언어에도 인용되지만, 그 깊은 산 속 옹달샘이 목마른 아기사슴에게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른 아침, 일행들과 산책을 했다. 빼꼼히 인사하듯, 얼굴은 내밀지도 못하는 햇살이 수줍은 듯 말을 건낸다.잠이 덜깬 나뭇잎이 어기적 거리듯 흔들린다. 통나무집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들이 창넘어 손짓한다. 된장찌게 냄새가 공복감을 더해준다. 

산 중턱에 올라, 우리가 묶었던 통나무집을 바라본다. 한밤중 나눴던 이야기가 집안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나풀거린다. 전날 실려왔던 먹거리들이 이제는 휴지 봉다리에 찌꺼기로 변질되어 담겨져있다. 통나무 집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그 안의 구조와 크기가 각기 다른,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다른 방방마다의 볼거리는 여러번을 와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 듯하다.

필터를 대고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있다. 그 필터의 영향에 의해 사진은 다르게 나타난다. 앞 쪽에 심어진 나무들이 통나무집을 더욱 자연 속의 집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잘 조성된 산책로 곳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볼 수 있는 전경들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반디랜드의 송재평원장은 남자 중의 남자, 그 호탕함이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누구나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주체자의 의지에 따라 다르다. 다양한 경험과 추진력, 그것은 그의 상징언어이다.

저녁이면 쏟아지는 별을 담을 수 있는 천문대가 있고, 멀리에는 무주의 자랑인 산맥 그라데이션이 사진가를 반긴다.

사진가에게 반영은 또 다른 세상만나기의 일환이다. 곤충 박물관 옆에는 연못이 있다. 그곳에는 모네의 연못에 고흐의 터치감이 살아 있다.두 예술가의 합작품이 반대랜드의 연못을 수놓고 있었다. 배병우의 소나무 못지 않은 자태를,소설 속 물레방아가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말한 자연이 과연 어떤 것인지 묻고 싶다. 반디랜드를 홍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늙어가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아무튼 나는 그곳의 공기를 마시며 지인들과 보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무주, 반디랜드에서 자연을 만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