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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미얀마의 아침, 양곤 사람들의 미소.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미얀마의 아침

순수함, 그것은 혼합물이 첨가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여행지의 아침은 낯설음이라는 신선함이 순수를 지켜준다. 카메라를 메고 호텔 주변을 서성거리는 일도 여행의 일부이며, 동심같은 순수를 만나는 방법이다. 나에게 여행은 항상 혼합되지 않은 새로운 것만을 골라내어 보려고 애쓴다.

버스가 떠난다. 젊은이들은 발 빠르게 차에 오른다. 단순히 출발하는 차에 오른다는 느낌 보다는 '변화하는 시대'에 편승하는 문화의 향유 처럼 보였다. 미얀마의 개방은 오래지 않은 과거의 흔적이다. 외부의 문화가 섞이면서 이곳은 급속도로 바뀔 것이다. 그 모습은 예상할 수는 있으나 확정 지을 수는 없다. 새로운 것이 들어와 정반합처럼 또 다른 것이 탄생하는 것이 문화의 속성 아니던가. 차는 젊은이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탄 차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어느 곳에 도착할 것이다. 혼돈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방된 미얀마 식의 정돈을 불러 올 것이다. 모계 사회의 순종적 딜레마는 세대간의 갈등을 빚으며 잉태의 환희를 맛볼 것이다.

이 버스를 급하게 탔던 그 젊은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까?

아침의 태양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낙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일터로 나가는 그들의 얼굴이 멀리서도 가늠할 수 있다. 모계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아우라는 영향력 이전에 책임감이다. 양손에 쥐어진 가방과 봉지는 이 두가지를 상징한다. 강렬한 태양은 그들을 늘 지켜주는 수호신의 모습처럼 보인다.

새벽 6시는 아이들에게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손님이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물 걸레로 구석 구석을 닦아낸다. 부모의 일을 돕고 있었다. 무표정 속에 담긴 낯선 눈빛과 수줍음, 어쩌면 강한 자존이 아이의 내면을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주한 그에게 말을 건냈다. 표정없이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많은 생각들이 몰려왔다.

양곤은 미얀마의 도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아침을 먹는다. 부부가 일을 하고 있다. 빈틈없는, 고지식한  남편과 그 사이에서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볼만하다. 남편은 밀가루를 반죽하고 길게 잘라 늘려서 던져주면 아내는 튀긴다. 더운 날씨, 불 앞에 앉아서 일하는 자체에서도 불만은 시작일 것이다. 미얀마 여자들의 튀어나온 입모양 더 그렇게  보일지 모르나, 순발력있는 남편이 순박한 아내를 꽤나 구박하며 사는 모양이다. 얼굴은 살아온 과거를 보여준다고 하잖는가?

녹색으로 버무려진 칼라 하모니가 일품이다. 녹색의 신선함을 쪼개니 보라색의 알맹이가 보인다. 연신 썰고 있다. 아침 일찍 부터 썰고 있지만 이 사람에게 얼마의 수입이 될지는 모른다. 인간은 비교에 의해서 불행을 자초한다. 이 사진을 찍는 동안 옆에서 장사하는 동료들이 장난 스럽게 웃어댄다. 어색한 듯 바라보는 얼굴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웃음 보따리가 한아름이다. 과일을 잘라서 무얼 해 먹는 것인지는 모른다. 묻지도 않았다. 그는 뭔가를 하고 있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걸 그냥 둬서는 안된다. 자르고 있어야 한다. 즐거운 일상을 위해서...

미얀마 사람들은 카메라를 물건으로 보지 않는다. 시선, 사람으로 본다. 인사라도 하듯, 밝게 웃는다. 웃는 얼굴이 최고의 성형이라고 말하던 나의 말에 스스로 공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형제가 다정하게 아침을 판다. 튀김과 과자, 그리고 밥과 국을 팔고 있었다. 조그만 의자에 앉아 고개을 숙이고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식맛은 먹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라, 이들의 얼굴에는 맛과 신뢰가 벌써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아낙이 아이 둘을 데리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 뒤를 따라 간 곳은 싸이클(일명 일력거)을 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아빠가 있었다. 미얀마에는 환각성이 있는 입담배를 피운다. 주로 노동자들이 피운다. 그 아이들의 아빠의 치아는 붉어져 있었다. 입담배를 피운다는 증거다. 동료들은 아이를 안아주며 정겨운 인사를 나눈다. 흥정이지만 대략 1달러를 받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 일을 통하여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인 것이다.

수도승도 강렬한 아침태양을 견딜수가 없나보다. 반듯이 탁발공양을 할때에는 맨발이다. 이런 풍경이 그곳에서는 익숙했다. 종교는 그들의 삶이라 했다. 일상과 종교를 떼어 놓은 것이 아닌 일상이 기원이며 갈망인 것이다.

다른 골목에서는 창고에서 헌책을 꺼내 나르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형제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잘생긴 인도 남자였다.

촬영을 거부하는 신지식인! 아침 나절내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창피하여 도망가는 여학생은 있었지만. 그런데 중년의 이 남성이 거부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컷 재빠르게 누르고 지나가면서 보니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외모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컴플렉스?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의 미소는 낯섬을 극복시켜 준다. 서양인들의 눈인사가 상대에 대한 배려라면, 미얀마 사람들의 웃음은 상대에게 경계심을 허물어 준다. 행복지수와 생활 환경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에게 비교가 서로를 힘겹게 만드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글자 한자의 차이지만 큰 결과를 만든다. 남과 비교가 아니라, 내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행복의 숫자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미얀마 사람들은 미소로 가르쳐주었다.


미얀마의 아침, 양곤의 미소.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