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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아이들이 kbs 홀에서 공연을 하다. 작은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경험은 이론을 능가한다. 교육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뭔가를 체험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고도 매력적이다. 천재도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 바늘에 실을 묶어서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앞에 선다는 것은 어김없이 위안과 과시의 심리적 메카니즘이 고려되어 있다. 여러사람앞에서 공연을 했다는 위안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과시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즐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kbs 홀에서 연주하는 방법은 일단 홀을 빌린다. 그리고 공연한다. 이게 절차다. 그러나 이 공연이 성공리에 완성되려면 관람객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걸맞는 연주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공연이라면 어느정도의 규모도 필요하다. 학부형들과 학원의 적절한 합의도 필요하다. 간단한 절차가 '누구나'라는 쉬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음악학원에서 이런 공연을 저다마 할 수는 없다. 공연장의 사진은 대동소이하다. 찍는 이는 엄청 다르게라는 창작적 정의를 들이대려 하지만 보는 사람은 거기서 거기라고 폄하라려 든다. 나도 공감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뭔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장 사진은 리허설때 찍는다. 공연이 시작되면 셔터 소리도 방해가 된다. 물론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이름의 공연은 사소한 소리도 음악일 수 있음을 검증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트를 빌미로 공연중 셔터소리를 합성시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기때문에 리허설에 조용히 촬영을 하게 되었다. 

리허설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아이의 표정을 담았다. 밝은 표정은 음악을 즐기고 있음이 확실했다. 휴게실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끼리 모여서 음악으로 장난치던 흥겨워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불쌍할 정도로 학원으로 전전긍긍하며 얼굴에 핏기도 없이 쫓기는 삶을 산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재미가 담겨있었다. 즐기고 있었다. 설렘이 있었다. 훗날 아이들이 음악가로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실용음악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며 사교적 관계를 활용되어도 좋다. 아이에게 삶을 즐기는 도구하나를 만들어 준 것이다. 작은별이란 음악학원은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곳은 가족 중심의 학원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부인이 원장이고, 큰 딸은 유학파이다. 그리고 남편은 사진가이다. 아이들의 연주하는 장면을 담아서 아이들에게 사진으로 그들의 모습을 담아준다.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음악적으로 완성시키는 휠링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다수를 앞에서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음악적 소양을 찾아 코칭을 하는 것이다. 끌려온 학원이 아니라 노는 학원으로, 자신의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즐기는 자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음악이 한 몫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