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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오사카, 치카츠아스카 박물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박물관에서 뭘 봐야하나? 인간은 뿌리를 찾고 싶어한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오사카, 치카츠아스카박물관은 고대사를 말하고 있다. 어느 발명가는 명품완성 과정에서 보잘 것 없는 시도까지도 오픈하곤 했다. 그것이 모아져 또 다른 창작적 브레인 스토밍을 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 과정까지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마도 박물관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일행이 도착하자 친절하게 담당직원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관심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든 모르든, 계란이 바위를 뚫듯 지속적인 관심은 언젠간 친근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박물관 초입에 비취된 형상이다.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것은 원칙이다. 세상의 순리이기도 하다. 어느 방향에서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서 화면이 달리 구성되듯, 빛이 어느방향에서 어느 질감, 어느 정도의 세기,  그리고 색감이 어떻게 입혀지느냐에 따라서 다른 프레임을 구성한다. 이것이 빛의 성질이다. 나는 빛을 말하면서 딱딱하게 글자를 적어가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럴 거 같지 않은 이미지 한장에서 그 의미를 따내어 오는 것을 즐긴다. 나는 융합이라 한다. 이 사진은 혼돈, 겸손, 흔적 등 많은 키워드를 찾아낼 수 있다. 사진이 즐거운 놀이인 이유이기도 하다.

모형은 실제를 베낀 것이다. 전통건물은 현재를 답습하고 있으며, 뒤에 비춰진 탑들도 환영같은 이미지들이다. 전부 헛것이다. 그렇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낸 나의 입장도 진실을 잃어버리고 있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 과거, 어느 곳에 촛점을 맞추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그것이 이 사진의 의도이다.

왠지 한 화가의 스토커처럼 보인다. 내가... 남들처럼 카메라로 찰칵거리며 찍지도 않는다. 생각을 투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예전같은면 자연스럽겠지만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것들을 점점 낯설게 만들고 있다. 도자기며 새의 형상이며 자신의 스타일로 그린다. 옆에서 봤지만 똑같지 않다. 그냥 비슷할 뿐이다. 이걸 크로키라고 하던가? 아무튼 확가의 생각을 읽어내기에 쉽지는 않다.

학교에서 배웠다.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  물론 그런 토기는 아니다. 박물관에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한쪽 귀퉁이를 깨어내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술취한 사람이 웃통을 까는 듯 보인다. 그들은 역사의 진실을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이 도자기의 단면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돌아가는 사람들을 찍고 있다. 스마트 폰은 지시한다. 감독의 지시이며, 배우는 살짝 뒤돌아보며 미소짓는다. 미소가 아름답다. 새로운 곳을 방문하면 첫째로 방문할 곳이 박물관과 같은 문화 유적지가 아닐까 싶다. 

만날 사람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를 듣고 가면 친근감이 있듯, 여행도 떠나기전 학습이 필요하다. 아무튼 준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보인다. 모두에게 골고루 찾아오는 기회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야구포수처럼 잘 잡아낸다. 그래서 일상이 고단하더라도 항상 고뇌를 씹으며 미소짓는거 아닐까...


오사카, 치카츠아스카 박물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