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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와일드라이프, 사진전 & 증강현실체험전에 대해.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항상 계기란 존재한다. 대림 미술관에 강의를 마치고, 발길 닫는 곳으로 몸을 맡겼다. 그런데 하루 종일 전시장과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을 '내 안의 아트를 만나는 날]이라' 규정하고 기억하려 한다. 그 중에 첫번째 만남은 세종문화회관에 전시관, 와일드라이프, 사진전 & 증강현실체험전이었다. 싸지 않은 입장료와 화보집. 그러나 결코 아깝지 않았던 것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그들과 진심어린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것을 찍으려고 기다림의 사투를 벌였던 사진작가들의 의지에 경외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나는 전시장에서의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전시장의 큐레이터나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단지 도록 속에 텍스트로는 그 결과물을 바라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도슨트의 설명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자연 속 그들의 삶과 지혜로움을 더욱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 속의 그들'은 생존을 위해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감각이 뛰어나다. 그들을 찍어내려면 자연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사실, 인간의 때를 벗기위한 사진가들의 고단한 행위가 사진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도록을 샀다. 그러나 대충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것은 작품성과 퀄러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직접 전시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이다. 그것은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과 그것을 찍은 작가들, 그리고 자연 속에 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새들은 날기위해 뼛속을 비우고 이빨을 없애 몸무개를 줄였다. 비행은 물론 단열, 방수, 장식 등의 다목적 기능을 갖춘 깃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늘은 새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해야하는 것으로 진화되었다. 사진은 빼기의 미학이며, 인간에게 혼돈은 내려 놓음과 버림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사람도 세상을 멋지게 살기위해 적성을 개발한다. 동물들은 그가 잘하는 것이 있다. 특히 카이프가다랭이잡이는 물고기를 잡는데 특출나다. 물밖에서 먹잇감을 관찰하다가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하여 먹이를 잡는다. 별명은 다이빙의 귀재라 한다. 알을 낳아 암수가 정답게 품는다. 한쪽이 알을 품을 때면 멀리까지 날아가 먹이를 잡아온다. 이들은 원래부터 맞벌이를 했던 것이다. 

뜨거운 사막에서 우스광스러운 몸짓을 하는 날쎈돌이를 본적이 있다. 양쪽 발을 번갈아 땅에 딛는 것이었다. 이유는 바닦이 너무 뜨거워서 였다. 사진에 보이는 큰홍학의 자세가 그렇다. 차가운 물에 자신을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번갈에 발을 딛는 것이었다. 특이한 부리를 가지고 있다. 부리가 다른 새들에 비해서 뒤집혀 있다. 그것은 사냥방식을 위해서 진화된 것이다. 디퍼런트, 창작자들의 그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사냥을 하며 생존을 지속하는 것이다. 다른 새들과 같은 부리를 가졌더라면 먹이사냥에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면 올빼미는 우리의 기존 상식을 뒤엎는다. '생긴대로'라는 관상학적 근거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은은한 깃털 색을 가지고 있지만 사나운 맹금류다. 가면 올빼미는 '밤의 사냥꾼'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깃털의 구성에 있는데 빗처럼 생긴 깃털과 긴 술을 가지고 있어서 날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밤에 들쥐나 개구리의 입장에서는 무방비한 상태에서 당할 수 밖에 없는 무서운 존재다. 스텔스기와 같은 기능이랄까...


육식동물들은 고기를 먹어야 산다. 그들은 사냥만이 그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그들은 청각, 후각, 시각 능력으로 먹잇감의 위치를 파악한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갈고리 모양의 발톱으로 먹잇감을 잡아 먹는다. 거기에 영리하게 생각할 줄도 안다. 그러나 이런 조건임에도 급변하는 생태계가 이들종을 멸종위기로 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혹독한 경쟁 속에서 뒤쳐진 사람들의 도태와 비유할 수 있는 말이다. 그들은 오늘도 먹잇감을 찾기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모처럼 사자가족들이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다. 암수의 역할 분담이 놀랍다. 사냥은 암사자가 한다. 이유는 수사자는 머리와 목덜미에 있는 풍성한 털때문에 기동성이 암사자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수사자의 역할을 싸움을 잘한다. 이유는 힘도 좋지만 목에 두른 떨들이 적의 목공격에 좀 더 안전하다. 그래서 수사자는 암사자가 사냥을 나가는 사이 새끼들을 돌본다. 능력있는 여자들과 사는 남자 백수들의 삶과 같다. 그런 남자들은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셔터맨을 하면서 낮시간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서 체력을 키우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밀림의 왕자 사자의 사냥능력과 성공률을 알고 나면 깔보게 된다. 20%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자는 새끼 사슴한마리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사자의 사냥스타일에 최선의 몰입을 칭찬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냥에 성공할 수 없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치타는 사냥이 특기다. 그러나 그들은 홀로 지내기를 좋아한다. 새끼들을 어미가 기른다. 그러나 숫놈이 없기때문에, 역할 분담을 못하기 때문에 사냥을 나간사이 새끼들이 사자나 하이에나에게 잡혀 먹힌다. 이들의 생존률은 10%이하이다. 구세주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나눠준다. 장점과 단점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마치 화장하는 것과 같다. 화장은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커버한다. 세상의 논리는 어느 한곳에서 너무는 것이 아니라 융합적 사고로 지혜를 펼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의 '검은숲'에 사는 붉은 여우의 카메라 앞에 포즈샷이다. 이 사진가는 이들을 찍기위해 6개월을 기다리며 이들과 한몸이 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인간의 때를 벗어야 야생 동물과 하나가 된다. 작가는 그러기위해 기거하면서 그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6개월이 지나던 어느날 붉은 여우가 한참동안 카메라 앞을 서성였다고 한다. 한컷의 작품을 완성하기위한 작가의 기다림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육식동물과는 다르게 초식동물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익숙하다. 널려있는 풀을 먹으며 육식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진화는 생존의 방향으로 모색되어 왔다. 초식동물은 나뭇잎, 열매, 과일 따위를 먹고 산다. 섬유질이 많아 소화가 어렵기 때문에 맷돌 같은 어금니와 강한 소화력을 지니고 있다. 코끼리, 기린, 하마와 코끼리를 제외하고는 포식자의 먹잇감이 된다. 무리를 지어 살면서 경계와 도주에 대해 힘을 모아 살아간다. 생태계는 혼자는 혼자대로, 무리는 무리대로 나름의 이유와 장단점을 가지고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남자는 능력있고, 잘생긴 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힘이다. 코끼리들이 서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싸움에 정정당당하게 승복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배워야 한다. 동물들은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싸움을 하지만, 코끼리는 엄니를 서로 맞부딪치거나 코를 휘감는 방식으로 힘겨루기를 한다. 어떤 기준이든 세상은 힘있는 자의 것이다. 또한 신기한 것은 코끼리들은 모계사회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할때는 늙은 암컷이 진두지휘한다. 삶의 경험이 한몫을 하지만, 대부분의 숫놈들은 성장기에 암놈의 예민한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무리에서 떠난다고 한다. 

롱다리와 롱목이 그들의 자태를 뽐내게 한다. 목이 기니깐 목을 이용하여 사랑행각이나 싸움을 벌일때도 활용한다. 네킹이라고 한다. 온유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우열경쟁에서 네킹을 통해 서로를 판가름할 때는 땅이 울릴 정도라 한다. 

말 중에 얼룩말이 있다. 그러나 조물주는 그들이 천적으로부터 살아갈 수 있는 비법으로 옷을 다르게 입혔다. 얼룩말의 문양이 더 촘촘한 것도 있는데, 이런 얼룩무늬는 흡혈 곤충인 체체파리의 공격으로부터 막기위한 그들의 지혜로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옷의 색감과 디자인을  자신을 덧보이게 하는 것인데 반해 얼룩말들에게 그런 문양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재지변처럼 동료나 가족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동료의식이 강한 아프리카 물소들의 슬픈 표정을 보라. 가까이에서 이들의 눈망울을 보았더라면 콧망울이 시큰했을 것이다. 포식자들이 동료를 잡아 먹고 있는 과정에서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있다. 두려움보다 동료의식이 강한 아프리카물소들에게서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듯하다.

사람은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눈다. 남방계는 아프리카쪽의 사람들처럼 코가 짧은 반면 북방계의 코는 긴편이다. 그것은 오랜 생존의 결과로 만들어진 외형이다. 코가 길어야 차가운 공기가 폐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차가움을 덥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새끼와 코를 비비며 모성애를 표하는 순록의 모습이다. 갓태어난 새끼와 어미의 얼굴이 다르다. 어미가 코가 긴 것이 바로 북방계가 코가 긴것과 같은 원리이다. 추운 날씨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 피부구조와 어린 새끼마져도 태어나자마자 성장하는 속도가 놀랄 정도로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파충류와 양서류들. 3억 6천만년전에 물고기에서 진화되어 처음으로 육지로 올라온 척추동물이 양서류이고, 그 다음 양서류에서 진화된 것이 파충류이다. 이들은 같은 조상인 것이 틀림없다. 양서류는 양서류대로 생존을 위해 땅과 물속을 오가며 생활하고, 호흡은 폐와 피부로 한다. 파충류는 양서류와 마찬가지고 물과 땅을 오가며 살아가며, 딱딱한 피부로 뒤덮여 생존을 유지해 왔다.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자식에 대한 사람이 극진하다. 그물무늬유리개구리 모성이 아닌 부성이 강하다. 자신의 내면이 훤히 보이는 모습으로 알을 지키고 있다. 몸에는 알과 같은 문양을 하고 있으며 포식자들에게 자신을 담보로 알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육안으로 판별분능일 정도로 교묘할 정도로 은페엄폐의 달인으로 군대 교관으로 초대해도 될 듯하다.

어미 악어의 입안에서 경우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귀엽다하기엔 우끼는 새끼 넓은 코카이만의 표정이다. '습지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명성을 가진 악어도 갓태어난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입안에서 키운다. 캥거루는 앞주머니에 자식을 키우고, 악어는 입안에다 키운다. 사람들은 자식을 눈에 넣어서 키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그 말이 떠올라서 한마디. 아마도 이 새끼가 크면 버릇이 없을 듯하다. 애지 중지 키운 자식은 버릇이 없지 않은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보이는가? 우리 인간의 처절한 사회생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새끼 장수거북이가 잠시후 입수한다. 그렇게 되면 독수리의 먹잇감으로부터 멀어지며 생존률이 높아진다. 작은 이 아이는 엄청 큰 거북이로 오랫동안 살아간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나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인간과도 많이 닮았다.


물속의 물짐승들. 수영할때 발갈퀴를 하면 더 빨리 수영할 수 있다. 물속의 어류는 척추동물 무리 중 가장 진화해 온 무리이다. 폐 대신 아가미로 숨을 쉬고, 팔다리 대신 꼬리와 지느러미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전기자극에 의해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육지와 다른 물 속에서의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생존을 담보받고 있었다.

흰고래가 귀엽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미소짓는 얼굴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인상 좋다고 한다. 흰고래는 공기방울을 만들어 놀고 있다. 인간도 태어남과 동시에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도 그런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르쳐준 방법이라고 한다. 조련사들이 담배 연기로 만들어서 가르쳐준 것이라는 썰이 있다. 

어디에서 많이 본 아이이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니모의 모습이다. 호기심 많은 니모가 인간들에게 잡혀가자 아빠가 그들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흰동가리는 말미잘과 공생을 한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을 먹는 나비고기를 쫓아주고, 말미잘은 흰동가리를 노리는 그루퍼나 곰치의 접근을 막아준다. 이보다 멋진 콤비플레이는 없다. 사람들은 동업하면서 서로의 갈등으로 끝이 좋지 않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에서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의 공생에서 인간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야생의 영장류들. 놀라운 것은 뇌의 주름이 복잡하게 생긴 이들은 생각과 느낌까지도 가지고 산다. 이들중에는 거울에 자신을 인식하는 아이들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꼬리 유무에 따라 유인원과 원숭이로 나뉜다.

맹모삼천지교.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바뀐다. 엄마 품에서 평온하게 잠든 이 아이의 미래는 혹독하다. 야생에서 살아 남기위해서는 보기보다는 엄청 거칠고 싸납다. 천생이 그런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생겨난 성향이라고 봐야 한다. 성선설이라... 이들의 우두머리로 낙점될 확률이 큰 것은 단지 힘이 쎈 것만이 아니라 머리 잘 쓰고 자기편이 많으면 유리하다. 우리 정치 상황하고도 비슷하다. 그래서 유인원인가?

신기하다. 아이들처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모였다. 오지에 가면 카메라에 신기해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무화과를 따먹으며 나무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데 사진가의 기다림은 이들까지도 카메라 앞에 세웠으니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가상현실, 그런데 현재에 있음으로 느껴졌다. 화면에 내가 나오고, 잠시후 북국곰이 나왔다. 지나가는데 내가 화면에서 그를 건드렸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 나에게 대들었다 이런 가상현실, 북극곰을 실제 만나지 않고도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 머릿 속에서 떠 올린 상황들이 실제 경험하는 것같은 적극적 브레인 스토밍이 가능한 공간을 만났다. 과학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근접하여 생각에 관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머지않아, 아바타의 출현으로 영생을 누리지 않을까 싶다.

여학생들의 움직임에 의하여 화면에 나오는 모형이 움직이며, 그 안의 것들과 접촉한다. 지나가는 야생동물들과 관여하며 소통을 시도한다. 경우의 수를 얼마나 만들어 놓았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과일같은 것들을 그런 터치감에 의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놀이를 주문한다. 지금은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조만간 인공지능과 사람의 생각만으로도 움직이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지금도 그런 연구들의 많이 진척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생각이 바로 화면과 현실을 움직이는 시대가 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다양한 생각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사진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함을 논하고 있다. 생각이라는 도구는 자주 활용하여 익숙해지면 내가 생각한 이상의 또 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우연히 만난 전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각자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여 미래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혜를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작가의 끈질긴 사투가 야생동물을 사물처럼 바라보던 기존의 생각에서 그들 또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할 수 있는 멋진 전시회였다. 사진은 자신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도록 사진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야생의 그들'을 촬영한 사진가들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하루였다. 준비한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와일드라이프, 사진전 & 증강현실체험전에 대해.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