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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가나아트스페이스, 조여영개인전. 꿈꾸는 민화소녀 사랑.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인사동은 예술의 거리다. 틀림없다. 분위기가 말해주는 것보다 거기에서 실제 예술가들의 경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림은 생각의 보따리에서 서로의 충돌을 일으키며 핵폭팔을 일으켜 새롭게 파생된 마지막 결실이 화폭에 담기는 작업이다. 처음 시도했던 것들이 과정을 거듭하면서 또 다른,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생각의 새끼치기.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 당당하게 전시된 어느 소녀의 꿈을 찾아갔다. 전시명은 '꿈꾸는 민화소녀..'이다.

빛은 꿈속에서 어떤 색깔을 하고 있었을까? 몽롱한 그 모습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꿈 속에서의 이미지는 가물거리지만 미래를 꿈꾸는 것은 극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 잠자리에 들어야만 꿀 수 있는 꿈이 있는가하면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꿈이 있다. 이 전시는 꿈 속의 이야기든, 바램이라는 꿈을 소재로 했던 그 꿈은 더욱 꿈처럼 몽롱하게 다가왔다. 꿈꾸는 소녀에게 꿈을 꾸는 듯한 환영을 만들기위해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묘사해서 촬영했다.

작가에게 공주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작가 자신을 비유한 것이냐고 자주 묻는다했다. 조여영작가에게 소녀는 '아직 덜 된'의 미완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었으며, 조건 없는 '아름다움'을 말하려고 했다. 성숙하지 않은, 그리고 성장되어지고 있는 상징어로 소녀를 대입하고 있었다. 그에게 어떤 꿈을 말하느냐고 물었다. 극명하게 답하지 않았다.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의도와 해석에서 관자의 해석 놀이를 즐기라는 의중이었다. 

제목에 '모란, 마법, 연꽃, 자전거를 타는...'을 붙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에 그런 소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작가노트에 작가가 벌써 중년이었음이 노출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과 자신이 쌓아온 삶의 틀 속에 껴 낮추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갑자기 던져진 물음과 함께 순간 멈칫거리는 공기의 적막이 온몸을 감싸 안은 그때였다.'. 중년여성, 나는 사진으로 그들과 호흡한다. 중년여성이라는 단어에 화들짝했던 것은 어떤 공감이 있었길래? 중년의 갈등, 아니 갈망이 소녀라는 미완의 이름으로 자신의 꿈을 그려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명의 이기가 흐트러 놓은 인간들의 갈망하는 꿈을 소녀의 순수함으로 환영짓고 싶은 의도는 아니었을까. 물론 작가의 노트에 적어낸 내용과는 달랐지만, 작가가 '느끼는대로'라는 면죄부가 모든 상상을 허락하는 넓은 혜안이 있었다. 

그 꿈은 지나가는 생각 속에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가면을 쓴 소녀의 그림 속에는 인간의 페르소나를 통해 나와 다른 나로 살고픈 욕구, 또는 내가 살아왔던 다면적 삶에서 자신의 원형을 찾고자하는 욕구가 드러나고 있음을 떠올리며 문을 나섰다. 

작가는 자신의 의중을 그들만의 도구를 활용하여 제언한다. 조여영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작품에 담긴 듯한 의미를 유추하는 것은 자유다. 사람들이 작품에 빠져 흥겨워하는것도 그 작품을 통한 자유로운 상상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품관람은 훔쳐보기로 규정하곤 한다. 오늘도 그 맛을 음미하며 고운 미소를 짓는다.


가나아트스페이스, 조여영개인전. 꿈꾸는 민화소녀 사랑.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