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장날, 설빔을 사러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대, 그리고 서운함. 빠듯한 살림살이의 단면이었다.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며 보냈던 겨울 밤의 추억이 고향 친구들과의 소주한잔에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얼큰하게 한잔하고 돌아오는 집 앞에서 만나 풍광, 나의 과거로 돌아가게 했다. 인간은 기억을 먹고 산다. 사진 속에서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진은 그 기억을 증명해주기에 훌륭한 도구이다.
가로등이 어둠을 밝힌다. 설 전날밤의 술렁임도 밝혀준다. 달리보니 우리집이 새롭다. 친구인 용석이네 마당에서 바라 본 풍광이다. 남들에게는 무조건 낯설겠지만 나에게 낯선 이유는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시선이 바뀐 것이다. 이젠 그리움을 부여잡기위해 애절하게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불빛은 벼를 벤 자리를 비추고 있다. 봄여름가을이 바뻤던 논두렁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겨울, 쉼이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옆집이다. 지나가다 불빛이 밖으로 흘러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손도손 이야기 소리까지도. 설 쇠러 자식들이 내려와 모처럼 흥겹다. 이젠 시골은 노인들 뿐이다. 외로운 노인들이 설이 기다려지는 것은 자식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슬프레 살짝 보이는 마당 건너편, 개키우는 우리가 조용하다. 몇년전 키우던 개가 팔려나갔는지 조용하다. 얼마 전 눈이 녹아 군데 군데 희긋 희긋하다. 논에 물을 받아 설매타던 그 시절 그 때가 그립다. '호호' 손을 불며 소매에 흐르는 콧물을 닦던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진에 채도를 많이 뺐다. 기억때문이었다. 지금은 빈 집이 내 기억을 지키고 서 있다. 헐어버린 것보다는 좋다. 미순네 집이다. 그곳에서 놀았던 추억의 공간이다.
가로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른 쪽에 있던 나무가지에 빛을 비춰주고 있다. 나무가 살아나고 파란 지붕이 신비롭다. 용석이네 집이다. 나의 첫차인 갤로퍼가 차를 돌리다가 담장을 들이받아 무너트렸던 담장이다. 아들은 무너트리고 아버지가 쌓아줬던 사연이 있는 곳이다. 도심의 삶 속에서 고향은 항상 마음 속에 있다. 명절이면 더욱 그때가 그리워진다. 애잔하게 물결치는 그 시절은 현실의 로망일 뿐 기억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끌리는 것이 아닐까.
2016년 설 전날밤, 설렘을 찍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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