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특히 나에게 기차는 떠남을 의미한다. 지금도 기차만 보면 설렌다. 예전에는 서울로 가는 방법이었다. 철길에 대한 추억도 많았다. 기차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철길에 귀를 대고 진동을 감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서울에 오갈때도 기차를 탔다. 기차역에서 저 멀리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들땐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기차가 움직이면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기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며 과자, 그리고 계란과 사이다를 사먹을 수 있다는 것도 기대 중의 하나였다. 앞자리에 처음보는 사람과 마주대할땐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쑥스러웠다. 완행열차로부터 ktx로의 진화는 눈깜짝할 사이에 이뤄졌다. 이젠 그런 기억을 안고 기차의 편리성과 차안에서 여유를 느낀지 오래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 가끔 기차 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내 고향 대천, 기억만으로도 항상 가슴뛰게 한다. 20대 대학진학으로 상경하여 지금껏 고향을 떠난 상태이다. 언제 돌아갈 지는 모르지만 가끔 갈때마다 추억을 되살리기위한 기차를 탄다. 편리함으로 말하자면 버스를 따를 수 없지만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기차를 타는 이유는 역시 추억 되새김질 때문이다. 플렛폼에 섰다. 아직 들녘은 횡했다. 가운데 기둥을 사이에 두고 들녘과 철길 옆을 걸어가는 젊은이를 찍었다. 이분법적 표현이기도 했지만 고향의 정취와 타지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오버랩시키기위한 시도였다. 촬영후 곧바로 기차가 도착했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기려는 시도는 난데 없고 피곤했던지 수원역까지 단잠에 빠져버렸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하차하는 사람들이 짐을 챙기는 소리였다.
노량진역에서 전철을 갈아탔다. 문득 눈에 들어 온 광경이 있었다. 기차길 너머 자그마한 집들이 정겹게 다가오며 30년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재수시절이었다. 학원가가 많았던 노량진, 나도 이곳에서 1년이란 시간동안 고독을 씹어야 했다. 기차를 타고 지나다가 노량진역이나 용산역을 지날때면 왠지 짠하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시골 청년의 힘겨운 사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고난은 지금 나를 곧게 설수 있도록 해준 자양분이었다고 확신한다.
기차는 달린다. 다음역에 어김없이 선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탄다. 인연으로 말하자면 엄청 많은 인연들이 사연을 만들어낸다. 기차는 항상 기억을 살려낸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기차만 떠올리면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나에게 기차는 과거라는 종착역으로 데려다주는 이동수단임에 틀림없다.
기차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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