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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규슈의 사무라이 마을을 거닐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초행길, 그것도 말이 안통하는 곳에서 렌트카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특히 나에게는 그렇다. 렌트카의 네비게이션에는 어설프게 번역된 한국어가 안내를 했다. 엉뚱한 곳에서 안내를 종료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후인과 벳부 근처에 사무라이 마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달려가 고생 좀 했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건 행운이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용서될 수 있었다.

네이게이션이 끊긴 주변에서 일행은 사무라이 마을이 될 만한 단서을 찾고 있었다. 눈이 번뜩 뜨이는 광경을 목격,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을 발견했다. 그 광경은 길을 인도하기도 하고, 카메라의 좋은 피사체로도 활용되었다. 셔터 소리를 들은 피사체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드디어 사무라이 마을에 당도했다. 여행객들은 빌려입은 기모노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며 그 시절을 상상이라도 하듯 설레는 표정이었다. 사진도 찍어주고 함께 찍기도 하며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연인이든 친구든 기모노를 입는 순간, 그들은 사무라이의 후예가 되어 있었다.

고택 안으로도 들어가니 담장에서도 세월의 흔적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기에 좋았다. 무너져버릴 듯한 담장은 말없이 유구한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담장너머 다른 집들도 비슷한 분위기로 느껴졌다. 집집마다 자신을 보여주기에 분주했다.

대문이 있었을 넓은 공간으로 보아 권세있는 사무라이집으로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던 찰나, 길을 걸어가던 여인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람은 다르나 누구에게나 있을 것만 같은 옛여인의 포스가 느껴졌다. 잠깐 멈춘 그 순간은 찰나이지만 수많은 느낌으로 보는 이들마다 다른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무라이 저택의 건너편이다. 일본 집들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집안 꾸미기, 서로들 집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정원으로 들어가자 오랫동안 키워온 화초들이 자태를 뽐내듯이 보였다.

집안은 꾸며져 있었지만 담장에 그려진 그림은 자연이 그린 것으로 보였다. 기와지붕에서 흘러내린 먹물이 산수화라도 그린듯이 보였다. 오랫동안 그곳을 바라보며 산수화가 정선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어렵게 그 곳과의 만남을 가졌지만, 그 이상의 즐거운 체험이었다. 담장에 자연이 그려놓은 산수화와 집안에 심어진 꽃나무에서 보여지는 풍광들은 예술작품이었다. 가옥은 세월 속으로 허물어지고 사라질 지라도 그 정신은 길이길이 남아 우리들의 가슴 속에 남겨질 것이다. 


규슈의 사무라이 마을을 거닐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