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버리고 싶어졌다
온천여행이라. 일본을 몇번 여행했지만 온천여행은 처음이었다. 온천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벳부라는 일본 최고의 온천지역을 가는 것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렌트카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벳부였다. 온통 동네가 수중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쏜살같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길 풍경이다. 바닥에서 온천수가 뿜어 나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하수구를 통해 온천물이 흘러내려가면서 수중기가 올라온 것이었다. 기모노 의상을 입은 여성이 일본임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고 싶어졌다. 길을 헤매는 긴장감 속에서 새로움과 직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벳부의 마을 풍경은 길을 잃지 않아도 모두가 새로운 것들이었다.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을 지나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 벽면에 작품이 눈에 띄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장면이 우리를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작품의 이름을 <환영식>이라고 붙였다. 세상은 내 마음먹은대로 보이나보다. 멋진 추억을 위해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둘쨋날, 여명이 밝아왔다. 다시 마을로 나갔다. 저녁에 이어 새벽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였다. 건물 현관을 비추는 불빛과 잠시 후 떠오르게 될 태양의 그림자가 현란하지만 무게감있게 다가왔다. 아침의 장엄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탄생을 의미하고 있었다. 불빛의 그라데이션처럼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이 오묘했다.
해안쪽으로 계속 걸어내려갔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벳부만의 색깔을 찍어내고 싶었다. 가로등이 허기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창가로 작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상상되었다. 아빠의 출근길! 집 안에서 웃음소리의 환청이 들려왔다. 정겨운 아침이 느껴졌다. 보이는 바다가 그렇게 멀리 있을 줄이야. 걸어도 걸어도 멀리 보이는 바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장면이었다. 바다 대신 흥미로운 장면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울타리 안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햇빛은 그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앞 뜰 풀잎과도 속삭이며 햇살은 말을 걸고 있었다. 자연이라는 놀이터에서 모두가 즐겁게 놀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벳부를 떠나던 날 명소를 찾았다. 그곳은 100년된 빵집이었다. 줄을 서서 빵을 샀다. 맛있었다. 감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빵을 사갔다.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앞다투어 빵을 사서 기다릴 틈도 없이 즉석에서 꺼내 먹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사들고 가는 봉지는 빵맛보다는 상인에 대한 신뢰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 벳부 온천여행(연합뉴스 마이다스 연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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