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승휴 칼럼/Photo Essay

흐린 산사를 밝힌 연등.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흐린 날씨는 저음이다. 이미지를 소리로 표현하면 그렇다. <부처님 오신날>이 가깝다.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다. <그 날>과는 관계없이. 이슬비 자욱하게 내리던 날이라 다운된 정서를 표현하기엔 좋다. 사진 찍기에 안 좋은 날은 없다. 쨍한 날씨만 좋은 것은 아니다. 무채색에 가까운 주변 분위기에 그나마 화려한 연등이 자태를 뽐낸다. 사진을 현장보다 더 어둡게 찍는다. 연등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포석이다. 자뻑 같지만 이 사진이 나는 좋다. 볼수록 괜찮다. 

볼수록 끌리는 사진이다. 나만의 위안이겠지. 연등이 눈에 들어온다. 종교적 신념이다. 바램이 연등의 불빛 속에서 피어오른다. 부처님 오시는 길을 밝힌다. 힘겨운 세상에 지혜의 등불이다. 연등은 그걸 상징한다. 사진은 전,중,후경으로 나뉘면서 연등을 피사체로 둔다. 경내 연등이 흐림 속에서 더욱 그 가치를 드러낸다. 멀리에 서성이는 나무들의 희미한 질감이 연등의 의미를 부각시켜준다. 그냥 있어도 안개비가 옷을 젹신다. 채도를 뺀 풍광은 <내려놓음>이다. 배려이자 마음을 비운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나를 내어주고 빈 자리에 바램을 담는다. 

고무신 한켤레 가지런히 놓여있다. 문닫힌 방문 앞 풍경이다. 수도승의 수많은 생각에서 나를 반추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