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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사진 속에 담긴 추억 한다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우리는 때로 과거를 더듬고 미래를 기약하며, 현재에는 살지 않는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는 시점이 바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과거를 통해 미소지을 수 있는 시점도 지금인데 말이다. 과거는 현재를 한단계 높여 긍정성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진다. 

언제인지는 정확치 않다. 이 사진은 우리 아이들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은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그것을 또 내 카메라가 찍은 것이다. 글이란 숙성이 필요하거늘, 이번만큼은 그 벅참에 견딜 수 없어 바로 포스팅을 할 요량으로 글을 쓴다. 다소 거칠거나 아쉬움이 있더라도 양해바란다.

색감으로 봐서 석양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지금은 사춘기를 지나며 서로 으르렁대지만 누나의 동생사랑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해맑은 웃음과 장난스런 표정이 정감이 간다. 이 사진에 들려진 폴라로이드 사진은 내가 한창 환장해서(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그 카메라를 두대씩이나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언제 출시될 지 모르는 필름때문에 사재기를 해가며 그 위풍당당함을 뽐내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주인공은 바로 sx-70이라는 것인데 필름안에 젤같은 것이 있어서 뾰족한 것으로 긁으면 유화같은 느낌이 났다. 장난거리로 딱이었다. 남들에게는 예술이라는 따위의 멘트를 날리며 한장에 2000원이 넘는 필름을 팍팍 찍어대며 시간에 따른 느낌을 조율하는 등 과학적 근거를 활용한 창작행위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포토샵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이 가능하기에 수요가 줄어들면서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되어 장롱 속에 잠자고 있다. 

아들이 들고 있는 안쪽 사진은 벌써 나의 손질이 있었던, 긁힌 자국이 보인다. 이 사진에서 아이들의 어린시절 천진난만한 모습 속에 나의 창작적 욕구 즉 흥미로움을 찾았던 열정적 시기를 기억할  수 있다.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많은 상상에 잠길 수 있는 사진을 말한다. 멋진 구도를 미롯한 미학을 가미한 사진도 보는 이에게 감흥을 던져주는 이유라면 미학자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위한 포퍼먼스에 불과하다.

현장감을 위해 칼라 사진이 필요하나, 이 사진만큼은  색바랜 느낌의 갈색사진이 어울릴 지도 모른다. 갈색이 갖는 추억은 노랫가사에도 있지만 흑백사진이 오래되면 갈색으로 변질되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오랜 사진에서 패턴처럼 나타났던 그것이 '갈색은 추억이다.'란 논제와 어울렸던 것은 아닐까?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아쉬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다. 신부는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설렘으로 신부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 시점, 신부입장을 하면서 친정아버지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건내면 '여자의 일생'의 비유처럼 남편에게로 넘겨진다.  

창작이 그렇듯, 사진에서도 은유와 상징, 그리고 직유를 통해서 의도를 펼친다. 의도란 주체자가 자신의 생각을 관자에게 던지를 언어이기에 더욱 세련된 방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풀어내기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여행지를 찾는 여행자에게 그곳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곳을 많이 알아놓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이듯, 사진촬영도 많은 학습을 거친 사람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많은 것들이 달리 들어온다.

폴라로이드의 사진은 나에게 과거를 끄집어 내었던 단서였고, 또한 친정아버지의 표정이 덧보이는 사진도 점점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물론 찍힌 순간 과거로 넘어가는 것이 사진의 직성이지만 말이다. 여행은 멀리 떠날 수록 기대가 더해지듯이, 과거는 멀수록 아련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으로 간다면 최고로 오랜 옛날로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아마도 사진 속의 과거는 '지나간'이 아니라, '다가올'로 바뀌어도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것이다. 사진 속의 과거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으니깐.


사진 속에 담긴 추억 한다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