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추억이 음식이냐고? 아니 그것보다 더 좋은 거. 물론 요즘처럼 먹거리가 풍요로운 시절을 전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살던 고향에도 5일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장날이면 붐비는 버스를 탔다. 이웃동네 사람도 만나는 등, 그곳에서 역사가 이뤄졌다. 대부분의 약속은 장날을 기점으로 이뤄진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오랜 만에 만난 사람과의 술 한잔도, 빌린 돈도 그때를 말미로 잡느다. 아마도 삶의 기준이 장날에 의해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즐비한 커피숍이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를 제공하지만 그 시절, 그 때는 그러질 못했다. 참말로 좋은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다. 나부터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그날은 주적 주적 비가 내렸다. 이곳을 찾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이곳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춘천행 기차를 타고, 춘천역에 도착했다. 역 앞의 여행 안내책자에서 발견한 '풍물시장', 무슨 연유인지 나의 시선을 끌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5일장이 이뤄진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노점상에는 없는 것 빼고 전부 있었다. 엉성한 나의 시선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예리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몸은 뼛속까지 카메라와 밀착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중에 1탄은 아빠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던 아이가 장날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신명이 나서 춤을 추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 아이는 나의 어린시절을 닮았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의 품에 안겨야 편안하다. 이 아이 또한 뭘 먹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에게 낯설음과 두려움의 어정쩡한 시선을 주며 나를 헥깔리게 했다. 고사리 손으로 음식을 집어 넣으며 바라보는 검정 눈동자의 순수함. 이 아이의 입에는 뭐가 들어있을까를 궁금해 할 겨를 도 없이, 아이는 또 다시...
뒤로 돌아 먹거리를 입에 넣고 있었다. 어른 못지 않은 식욕을 자랑하는 그 아이의 앞에 놓인 접시는 금새 바닥이 났다. 무아지경이라.
아이가 춤을 추는 것도, 마음 편히 음식을 먹고 있는 것도 편안함이 담보 되어야 한다. 엄마와 아빠! 찍은 사진은 메일로 보내졌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길 빈다. 아이가 먹는 즐거움과 그것을 바라보는 아빠의 흥겨운 미소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미식가의 예리한 미감이 행복의 절대 조건일까, 그것은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착각일 것이다. 그 이상의 이상을 추구해야하는 압박감이 짓누를 터, 고민이 떠나지 않는 그들의 삶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에게 먹는 즐거움이란 먹거리의 질적 수준이 아니라,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 몰입 수준으로 먹기에 열중하고, 그것이 충족하면 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아이의 표현방식은 창작자의 그것을 닮았다. 가식을 부리지 않는 내면의 감정에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순수적 표현이 삶의 지혜라는 겸손에 의해 포장되면서 숨겨지는 누를 범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아이는 내게 말했다. '저는 엄마 젖만 먹어요.'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안을때 가슴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고 있다. 엄마의 숨소리를 듣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라는 부모의 바램때문이었을까? 세상에 더욱 가까이, 삶의 지혜를 터득하라는.
낯설음이 서서히 익숙함으로 변화하면서, 그 삶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50을 바라보는 나이때문일까?
춘천 풍물시장 1탄, 아이에게 장날이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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