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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춘천 풍물시장 2탄, 검정 봉다리와 엿장수의 가위소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장날, 아직도 살아 있다. 약간의 오리지널리티만이 상실했을 뿐이다. 현대화된 시설이 그 첫번째이고, 물건의 다양성이 결여도 그 이유중의 하나이다. 누구는 이를 느끼기 위해 중국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것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 진정성이 존재할까. 사진가들은 장날, '사라지는 장면'을 움켜잡기 위해 시골로 시골로 깊숙히 찾아든다. 나는 춘천 풍물시장에서 장날이 가지고 있는 그 맛을 조금이나마 찾아내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그 이유는 잠깐씩 스치고 지나가는 상황에서 촉을 드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진의 대비는 더 많은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세상은 두부류의 인간으로 나뉜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 사람과 안되는 사람으로. 생선가게 아줌마! 무뚝뚝한 표정이 당연히 거부할 거란 예상으로 찰나를 포착하며 도찰을 시도했다. 한손으로 물건을 주고 돈을 받는 장면같지만 연속으로 찍힌 다음 장면에는 검정색 봉다리가 물건을 사는 사람의 오른손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정봉다리의 비빌, 왜일까? 생선가게나 정육점에는 으레 검정봉다리에 물건을 담는다. 내부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 타인에 대한 궁금증 유발, 질기고 싼 가격? 의문을 던지고 생각에 잠기면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 존재이유에 대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우리에게 검정은 죽음을 비롯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쓰고 있지만 왜 쓰고 있는지 모르는 것들이 많다. 우리에게 이야기는 물음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가운데 만들어진다. 검정 봉다리의 존재이유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가려졌다. 초상권에 문제가 없을가? 그건 따져 볼 일이다. 우선 그녀가 초상권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해 올때부터 시작된다. 가려진 얼굴이 익명성이란 이름으로 그냥 보통명사, 생선가게 아줌마로 치부될 수 있을까? 미얀마에서 새벽거리를 거닐며 찍었던 해맑은, 방어적이지 않은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녀는 내가 먼저 판단하고 얼굴이 가려진 사진을 찍었지만 갑자기 웃는 얼굴로 나의 카메라를 쳐다볼 수도 있다. 그때의 그 얼굴이 이 사진에서 어떤 가치를 더할까? 사실 나는 익명성이란 의도로 촬영한 사진이라서 얼굴의 출현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엿장수는 끼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요구한다. 의상의 현란함과 얼굴에 그려진 페인팅이 그렇다. 의상을 패션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구성의 완성도는 의미 없다. 여장 남자의 의복이 과연 어떤 패션어블한 의미를 가질것인가? 채도 높은 의상을 구비하여 시선을 끌기만 하면 된다. 우스광스러움도 전제 조건이다. 이 또한 심리적 의도가 부가된 것이다. 멋지고 세련된 사람이 엿을 팔경우 사람들은 그의 잘난 모습에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발동할 것이다. 사람은 타인의 완벽함보다 허술한 모습 속에서 방어의 자물쇠를 푼다. 의상 뿐이랴, 황당하게 그려진  메이크업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한 낙서 수준이다. 그 얼굴은 더욱 사람들의 시선과 정감을 준다. 사람들은 나보다 잘난 사람은 짓밟으려는 본성같은 것이 있다. 엿장수의 스타일은 심리적 방어막을 무너뜨리기 위한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그는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V자를 내세우기까지 하면서, 사진을 찍는 내내 카메라를 의식하며 표정과 포즈를 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은 엿장수 학원도 있고, 협회도 있단다. 엿자르기, 의상 코디네이션, 그리고 각설이 타령도 가르친다고 했다. 흥미로운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실용음악을 배우는 데 몇년이 걸리는 데 비하면, 각설이 타령을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다. 물론 깊이의 문제는 있겠지만 개인기로는 딱이란 생각이다. 어떤가, 한번 배워볼 생각? 모임이나 지인들 앞에서 그 정도를 할 수 있다면 친화적 수단으로 확실하지 않을까. 

왜, 엿장수는 이런 복장을 하고 있을까? 사람을 모아 놓고 공연을 한다. 공연이 끝나면 엿을 팔고, 사준다. 공연료다. 아니 즐거움을 준 댓가를 엿값에 추가적으로 가치를 부여하여 받는 것이다. 마케팅이다. 엿의 맛은 거기서 거기다. 물론 울릉도 호박엿을 만드는 장인이 이 소리를 들으면 상당히 불쾌해 할 수도 있다. 엿장수의 연기력에 따라서 엿 값이 달라진다. 상점에 점잖게 놓여 있는 엿과 각설이의 춤사위가 있는 엿은 가격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한 엿값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즐거움이라는 색다른 맛을 가미해서 팔기 때문이다.

문화란 부지불식간에 우리 의식 속에 담긴다. 검정 봉다리의 습관이나 엿장수의 재미난 외형과 행위가 엿값을 제대로 받기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삶의 단편을 만나곤 한다. 우연한 만남, 춘천 풍물시장은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게 했고, 강력한 브레인 스토밍을 해주었다. 


춘천 풍물시장 2탄, 검정 봉다리와 엿장수의 가위소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