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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고향, 마음이 머무는 곳.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올해로 100살이 되는 노인이 계신 곳. 70대 초반의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하는 곳. 그곳은 나의 고향집이다. 나의 할머니는 올해로 100세다. 물론 장수는 명에 맡겨지지만 봉양하는 자식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환경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고, 꿈을 키웠으며 힘겨울때 떠 오르는 그곳, 나의 고향이다. 

아침이 밝아 왔다. 햇살이 마을을 비춘다. 못자리할 씻나락을 키우고 있는 더미와 마을 중앙에 오래 된 집에 비춰진 낮은 가옥이 추억을 되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연녹색의 빛깔이 빛을 받아 생명이 살아남을 느끼게 해준다.

외양간만 보면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은 대학입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87년 소파동으로 인하여 4년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키워왔던 소의 꿈이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 팠던 시절. 호기심 어린 송아지의 눈망울이 귀엽다. 눈가의 주름이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인다. 

정원이다. 아니 그냥 마당이다. 멀리는 야산이 보이고,  앞뜰에는 철쭉이 녹색 이파리와의 대비 속에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뜰안에 흐르는 푸른빛이 신비로움을 가미시키고 있다. 지난 겨울 땅에 묻었던 김칫독이 들어 있었던 그곳,  여름이면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던 수독가, 윗통으로 등멱을 감던 곳이기도 하다. 

조카가 그려 놓은 벽화와 하얀 색 꽃이 잘 어우려져 있다.

거실에서 바라 본, 들과 산. 철마나 다른 옷을 갈아 입는 바깥 세상. 녹색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시골사람들의 얼굴에는 편안함이 묻어 나는 것이다.

나의 고향은 배산 임수다. 뒤는 산이요, 앞은 바다다. 얼마후며 모내기를 할 논이다. 지금은 쉬고 있다. 그 옛날에는 황소가 쟁기를 달고 논을 갈았다. 지금은 기계화, 그 편리함이 더욱 풍요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아버지와 매제가,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장면이 정겹다. 나는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짬을 내서 사진을 찍는거다.

새참이다. 항상 일과 일 사이에 기대되는 시간. 이 시간이 일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맥주, 소주가 그리고 쑥떡이 있다. 아직, 막걸리의 등장은 아닌 듯. 막걸리의 트림은 일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새참을 먹고 더욱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먹고나니 더욱 움직임이 다르다.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ㅋㅋ. 품앗이가 아직도 살아 있다. 

일이 수월해 진 이유가 있었다. 작년보다 다른 것은 못자리에 미리 물을 대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퍽하게 장화 목까지 빠져서 속도가 붙지 않았는데, 마른 바닦에서 일하는 것은 손짚고 헤엄치기처럼 쉽다. 물론 땀은 난다. 일을 마치고 삽을 들고 논에서 나오시는 나의 아버지. 나는 세상에서 나의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의 정직과 성실, 나는 정직과 성실 중에 성실을 더 닮은 듯하다. 정직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지 않은 자기와의 싸움이랄까? 내가 봤던 나의 아버지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정직을 실천에 옮기셨던 분이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고향의 존재는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고향이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부모형제가 함께 하기에 더욱 그렇다. 아마도 혈육이 없는 고향은 더욱 아픔을 안겨줄 듯하다. 현재,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이다. 부엌에는 어머니의 된장찌게가 끓고 있다. 가끔은 숭숭 썰린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는 어떠구... 이게 고향이다. 나는 오늘도 고향의 모판을 들고 들녂을 달리며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음을 행복으로 여긴다.


고향, 마음이 머무는 곳.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