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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Book 포토리뷰

'어거스트 러쉬', 영화 속에서 음악을 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도심 속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를 리듬감으로 받아들이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그에게 음악이었다. 자연 속에 음악이 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기운이 계속 음악으로 끌려가는 아이의 몰입에 나 또한 그곳으로 빠져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사진은 어떤가?  음악은 들으면 되고 그것을 극화하여 연주하는 것이라고 영화 속의 천재 소년이 가르쳐 준 말이다. 사진은 널려있는 의미 조각들을 모으는 작업과 펼치는 작업을 한다. 그것을 카메라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음악과 사진, 미술일 수도 있다. 청각과 시각의 대비.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음악이 있고, 영상이 있으며 스토리텔링과 브레인 스토밍이 있다. 영화 속의 소년, 어거스트 러쉬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몰입하며 빈구석을 채워간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영화의 감상문은 아니다. 영화의 음악, 그 속에 담긴 사진 찍기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 고독 속에 욕망과의 타협을 해가는 과정, 나에게 사진은 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다. 돌파구를 찾아 해멘다. 그 자체는 고뇌스럽지 않다. 거기에는 기대와 설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똑같다. 차이만이 있을 뿐, 항상 찾고 있다. 

타 장르와의 융합, 비슷한 맥락이 많다. 손짓이 비단 사람들의 행동을 지휘할 때만 쓰겠는가?  사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짓은 항상 무엇을 부르고 조정하고 있다. 지휘자가 연주를 지휘하 듯, 자연 속에서 찾아낸 소리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은 자연 속에 들리는 모든 것은 음악이라고 했고, 감상자는 단지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 또한 그 속에서 보여지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단지 사진은 그것을 남기는 것이며, 좀더 세련된 결실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시선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도심 속, 대문앞에 정돈 된 화분에서 자란 꽃잎이다. 조용한 정오의 느낌이지만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비유되는 이미지가 보일 것이다. 도심이기에 그렇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도시인, 거친 피부를 한 얼굴은 아닌. 

시끄럽다. 크락숀, 사람, 신호등을 비롯한 조용한 소리는 아니다. 신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자연같지 않은 자연이다. 녹색을 띤 가로수가 아파 보인다. 도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박한 얼굴이 떠오른다. 

조용한 숲 속에는 낙엽구르는 소리, 연인의 속삭이는 소리, 저멀리에서 들이는 자동차 소리, 기차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더욱 미세한 소리까지 들린다. 소리는 상대적이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강한 소리 순으로 들리지만 조용한 곳에서는 미세한 소리부터 청각에 검색된다. 소리와 이미지는  다르지 않다. 소리의 파편들이나 이미지의 단면이나.

 영화의 인트로에서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고 줌인 줌아웃을 거듭하면서 영상을 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가의 입장에서 그 장면이 연결되어 보이지 않고 단락 단락 나눠서 보여진다. 샷의 구성이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보여지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도 다른 위치와 화각이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이 영화는 주인공이 길가에서 들어오는 온갖 소리를 음악으로 구성하여 작곡에 까지 이른다. 각각의 소리를 묶어 내듯이, 사진 또한 피사체들간의 구성을 리듬감있게 구성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영화속의 관심사항은 메시지와 철학 심리적인 부분이다. 

음악은 보고 사진은 들어야 한다. 영화는  두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다. 융합적 사고를 통해 사고의 확장은 영화가 최고다.


'어거스트 러쉬', 영화 속에서 음악을 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